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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인물iN] ‘복지국가의 아버지’ 베버리지 –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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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0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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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발간한 ‘베버리지 보고서’

[편집자주: ‘복지인물iN’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에 감사하며 복지와 관련된 인물의 업적, 비하인드 등을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소식으로 매주 찾아오겠습니다. 복지의 여정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윌리엄 헨리 베버리지(Wiliam Henry Beveridge, 1879~1963)
윌리엄 헨리 베버리지(Wiliam Henry Beveridge, 1879~1963)

금수저, 흙수저 같은 신조어가 탄생하는 등 소득 불평등에 관한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더욱 불거지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사회보장제도가 잘 기능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선 맨 처음 보편적 사회복지를 고안해낸 영국의 정부보고서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 1942년 발간)’를 돌아봐야 한다. 해당 보고서는 ‘복지국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헨리 베버리지(Wiliam Henry Beveridge, 1879~1963) 이름을 따 ‘베버리지 보고서’로 통용된다.

그는 2차 세계대전(1939~1945) 당시 영국의 사회문제를 5대 악(무지, 불결, 질병, 나태, 궁핍)으로 규정했고, 그 중 ‘궁핍 퇴치’를 목적으로 베버리지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19세기 이후 단편적으로 발달해온 사회보장제도를 체계화했다. 그가 제시한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은 의무가입 기반의 사회보험이었다. 사회보험이 국민의 1차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되,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부조(국가부조)가 기능하는 구조였다. 그는 사회보장 목표를 최저선 달성으로 삼았고, 최저선을 넘어서는 욕구에 대해서는 개인의 책임을 중시했다. 베버리지 보고서를 돌아보며, 사회보장제도가 갖는 의의를 되짚어보자.

 

보편적 복지, 사회적 안전망 ‘사회보험’ 제안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은 전쟁의 여파로 사회기반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베버리지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재건을 이루고자 사회보장제도 설계를 제안했다.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은 강제적인 사회보험이었다. 그는 사회보험으로 모든 종류의 사회적 위험을 대비하면서, 국가가 궁핍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고자 했다. 베버리지가 사회보험을 고안한 건 역설적이게도 기존의 영국 보험제도가 궁핍에 일조한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1940년대 이전 영국에서는 적정한 보험급여(실업급여, 노령연금, 과부연금 등)액을 설정하기 위한 ‘물가조사’가 없었다. 그 탓에 보험급여는 물가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고, 이마저도 전쟁의 혼란 속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그는 일정 기준 이하의 수입이 궁핍을 불러일으켰다며, 사회보험에 의한 소득재분배를 주장했다. 적용대상자 범위와 보장내용을 늘리고 연금비율을 높임으로써, 기존 보험이 사회보험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영국은 1601년 엘리자베스 1세가 고안한 ‘빈민법’을 실시해오면서 빈민을 적절한 통제가 필요한 구제 대상으로 바라봤었다. 사회보험제도는 이런 영국 빈민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었다. 베버리지는 사회보험 안에서 보험료를 냄으로써, 빈민을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자로 정의했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영국이 일부 빈민을 대상으로 행해졌던 선별적 복지에서 전 국민을 돌보는 보편적 복지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는 출발점이었다.

베버리지 보고서 한국어 번역판 [자료=사회평론아카데미]
베버리지 보고서 한국어 번역판 [자료=사회평론아카데미]

 

최저생활에 대한 기준을 제시, 공공부조는 보조적 역할

베버리지에게는 사회보장제도의 중요한 운영원칙이 있었다. 국가는 물리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최저생활비만 지급해야 한다는 ‘최저생계의 원칙’과, 국민이라면 사회보험 혹은 국가부조로 최저생활을 위한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국민 최저한의 원칙’이다. 그는 ‘국민최저선’을 강조하면서, 최저 이상의 욕구는 개인의 몫으로 남겨뒀다. 최저선의 개념은 사회보험을 주축으로 실현되나, 그는 보험료조차 납부하지 못하는 빈민을 위한 제도도 제안했다.

그 제도는 당시 국가보조라는 명칭으로 등장했던 현재의 공공부조다. 사회보험에 비해 공공부조는 국민들에게 불편한 제도로 구상됐다. 사회보험은 징수한 기여금을 기반으로 급여를 제공해 별다른 욕구 입증과 자산조사를 거치지 않았다. 하지만 공공부조는 납부이력과 무관하게 개인의 생활형편을 고려해 국고에서 급여를 지급하는 만큼, 기준이 까다로웠다. 그래서 공공부조 수급자는 욕구 입증과 자산조사를 필수로 따르도록 기획됐다. 이처럼 베버리지는 누구라도 국민이라면 ‘최저생활’은 필수로 누릴 수 있도록 쳬계를 설계했다.

 

흩어진 복지 체계 한곳으로

그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흩어진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복지체계를 한곳으로 모을 것을 제안했다. 그는 사회보장의 일원화에 대한 이득이 크다며 사회보험, 공공부조 등의 사회보장제도 전체 운영은 ‘사회보장부’가 담당하도록 했다. 사회보장부 산하에는 모든 국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보장사무소를 두자고 제시했는데, 지금의 행정복지센터 같은 개념이다.

사실 우리의 월급통장에서 4대보험이 한 번에 납부되는 것도 베버리지 덕이다. 베버리지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기금이 별도로 관리되면서도, 국민이 기금을 간편하게 한번에 납부되도록 해서 서류비용과 번거로움을 없애자고 제시했다. “이것은 이점이 명백하다. 연간 2천만 명의 사람들이 두 개의 보험서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보험서류만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1942년 12월 발간된 베버리지 보고서는 집필 당시 그저 영국사회 청사진에 불과했다. 그러나 긴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영국 국민들은 베버리지의 보편적 복지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 결과 1945년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가 집권하면서 영국의 사회보장정책에 적극 반영됐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도 영향을 미쳐 많은 국가의 사회복지정책에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보편적 복지에 대한 열망은 세계대전이나 코로나19 펜데믹 등 어느 위기 상황에서나 간절했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고안된 지 반 세기가 지난 제도다. 달라진 사회, 경제 체제를 고려하면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는 사회보장제도로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다만 모든 위험에 대비하려 보편적 복지를 고안한 베버리지의 의도대로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위험을 잘 대비했는지는 점검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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