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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인물iN] “청소년이 미래의 주역”이다… 사랑 나누기 운동 붐을 일으킨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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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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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복지인물iN’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에 감사하며 복지와 관련된 인물의 업적, 비하인드 등을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소식으로 매주 찾아오겠습니다. 복지의 여정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아이들이 모금한 사랑의 빵 [사진=월드비전]
우리에겐 모두 어릴 적 호주머니 속 동전과 지폐를 담아뒀던 노란색 빵 모양의 저금통이 있었다. 이번 복지인물iN에서 만나볼 국제인도주의 운동가 이윤구(1929~2013) 박사는 이 ‘사랑의 빵’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세계에서 일어난 전쟁의 참혹함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면서, 기나긴 전쟁으로 황량해진 나라를 일으켜 세울 인재가 ‘청소년’이라고 굳게 믿었다.

이 박사는 세상을 재건하는 데는 ‘아이들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했다. 일제 식민지 생활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부강한 나라들의 원조를 되갚는 날을 고대했던 그는 아이들이 “더불어 사는 기쁨”을 누리며 살길 바랬다. 그의 원대한 꿈은, 우리가 모두 기부의 주체가 됐던 ‘사랑의 빵’을 통해 조금씩 실현됐다.

 

자원봉사에 한평생을 바쳤던 그의 단 하나의 목표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것”



국제인도주의 운동가 이윤구(1929~2013) 박사 [사진=한국사회복지사협의회]
이 박사 본인도 군대에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하면서, 국내 ‘피난민’의 삶을 속속히 알게 되기 전까지 한평생을 봉사하면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빗발치던 총알도 흰 눈으로 뒤덮여 버린 산속에서 느낀 떨림은 ‘추위’보다 시체에 뒤엉켜진 상황에 대한 ‘공포’였다. 무서워서 의식을 잃어버렸던 그 경험은 청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는 어렵게 살아가는 피난민을 도우며 살고자 했다.

군 복무를 마친 이 박사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남한에 내려온 실향민, 총살로 남편을 잃은 과부, 고아 등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을 위해 앞장선 날을 살게 됐다. 그의 헌신은 전남 해남군에 “구제품에만 의지하며 살 수 없다”면서 논과 밭을 개척해 정착지를 마련하는 ‘해안 간척지 사업’을 벌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어느 때와 변함없이 그는 신음하던 환자들과 가족을 돌보던 도중 한 소녀를 만났다. 생을 마감하려 삼켰던 양잿물을 입에 머금고 실려 온 12세 나이의 어린 아이는 그을린 입안에 무엇도 목으로 넘길 수가 없던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가 정성껏 돌봐 다시 살고 싶다는 희망 가진 소녀는, 보리밥 덩어리를 씹어보려다 질식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는 피난민에게 헌신했던 이 박사가 ‘청소년’을 위한 생활 터전 보급에 눈길이 향한 이유가 됐다.

그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이집트 등 세계 곳곳에서 난민을 대할 때 더욱 어린아이가 눈에 밟혔다. 청소년이 ‘미래의 주역’인데 밥 한 끼도 먹어보지 못한 것처럼 뼈가 드러나는 그들의 모습에 눈물이 서린 것이었다. 이윤구 박사의 행보가 보여준 단 하나의 목표는 한국청소년연구에 투고한 ‘90년대 청소년의 세계와 한국의 과제’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청소년 복지에 둔감한 사회는 세계의 후진국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랑의 빵, 기적의 실천



[사진=한국YWCA 1991년 12월호]

국내외서 이윤구 박사가 펼쳐온 자원봉사 철학은 1991년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모두 전파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때 월드비전 한국 회장직을 지냈던 그는 캄보디아 부대통령으로부터 수만 개의 농기구를 부탁받고선 외면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농민들이 삽과 호미와 같은 농기구가 없어 맨손으로 흙을 파고 씨를 심다가 피투성이가 된 손이 그의 마음을 울렸다.

그는 한국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나는 나라로서 위상을 보여주며 ‘기금 운동’을 하길 희망했다. 그 꿈은 아이들의 참여를 통해 이뤄졌다. 그 ‘사랑의 빵’ 저금통 속에 매일 아껴서 돈을 저금해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면 “배고프고 헐벗은 한 친구에게 최소한의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할 비용을 제공해 주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고 홍보하자 다들 발 벗고 나섰다.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은 가난한 농민 가정에 5만 개의 ‘사랑의 괭이’를 선물했고, 캄보디아를 비롯한 베트남과 라오스 등에 살고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는 비가 새지 않는 튼튼한 교실에서 끼니를 거르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3년 만에 290만 개의 사랑의 빵으로 모금된 64억 원은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발했다.

 

이윤구 박사의 ‘사랑 나누기 운동’ 붐을 위한 행보는 2000년 들어 인제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했을 때도 계속됐다. 그는 청정구역인 남해의 한 섬에 인제대생이 2,001명이 모여 쓰레기 청소를 하는 SOS(Save Our Sea) 활동 등 ‘낙동강 살리기’ 운동을 주도했다. 고령의 나이에 삶의 마지막까지도 자원봉사를 소홀히 하던 학생들에게 나눔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었던 그의 작은 포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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