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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케치] 돌봄의 전환... 휴먼 서비스에 ‘디지털 헬스케어’ 접목 노력들
SBIC 2023 성남 바이오헬스케어 국제 컨벤션 현장. [사진=요양뉴스]
디지털 헬스케어는 지능정보기술과 보건의료데이터를 활용해 질병의 예방·진단·치료, 평생건강관리, 연구개발 등 국민의 건강증진에 기여하는 일련의 활동과 수단을 말한다. 이 디지털 헬스케어가 기술 개발 단계를 넘어 지역사회로 진출하고 있다.
2023 성남 바이오헬스케어 국제 컨벤션’(이하 ‘SBIC 2023’)이 이달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성남산업진흥원 킨스타워 등에서 열린다. 성남시 산하 성남산업진흥원이 성남의 바이오헬스 우수기술과 기업을 전략적으로 알리고 산·학·연·병·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자 마련한 자리다.
‘SBIC 2023’에서는 ▶지역사회 디지털 헬스케어 ▶지역사회 병의원 중심의 디지털 치과 ▶지역사회 안전과 글로벌 방역 플랫폼 3개 주제를 축으로 다양한 세션들이 진행됐다. 첫 개막날인 29일에는 헬스케어의 디지털 전환,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헬스케어 활용 경향, 서비스 실증 및 해외 진출 등 지역사회의 의료·건강·돌봄·서비스에 디지털 헬스케어를 접목하기 위한 과정을 다각도로 조망했다.
헬스케어의 디지털 전환 중시... 넘어야 할 과제는?
기조 발언 중인 가천대학교 바이오의료기기학과 김영주 교수. [사진=요양뉴스]
제1세션 (헬스케어의 디지털 전환) 첫 연사로 나선 가천대학교 바이오의료기기학과 김영주 교수는 커뮤니티 케어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기조 발언으로 참여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정부 연구개발(R&D) 지원을 바탕으로 기업들이 유의미하게 도출한 임상 성과를 강조하고, 이 기술이 지역사회로 접목할 때 불러올 혁신에 대해 소개했다.
그중 하나는 수면 기록의 데이터화다. 어르신들이 주야간보호기관과 같은 재가급여 이용률이 높아져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증가한 상황에서, 수면의 질은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수면기록을 데이터화하면 요양보호사나 간호사가 노인들의 수면 시간 등을 편리하게 관리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골자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의료기기 헬스케어 박지훈 PD는 “국내 GDP 대비 의료기기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0.73%에 불과하며, 디지털 헬스케어는 산업 규모조차 없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인력 양성, 제도 개선 등이 필요하다”며 “특히 이 서비스에 대한 지불 주체가 모호한데, 개인이 서비스를 지불하게 하려면 명확한 효과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스마트의료기기산업진흥재단 정요한 팀장은 성남 유망기업들과 관계자들에게 사전에 인허가 보험 수가 등을 분석하는 의료기기 인성 평가에 대해 공유했다. 의료기기 특성상 제도나 규제의 영향을 받는 산업이므로, 철저하게 상품 개발 과정에 대비해 상품화 성공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국내외 데이터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지역사회 가까이서 움직임”
이모코그 노유헌 대표. [사진=요앙뉴스]
한국과 일본의 양국간 디지털 헬스케어 접목 경향에 관한 제2세션도 주목받았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한 분야인 디지털 치료제(이하 DTx)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치료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이날 DTx 스타트업 이모코그 노유헌 대표는 의사와 대면해 진행되는 치매 예방과 치매 치료를 DTx 구현해 냈다고 설명했다.
이모코그의 경도인지장애 개선 의료기기 코그테라(Cogthera) 확증 임상시험 계획에 돌입했다. 확증 임상은 의료기기 허가를 위해서 제출해야 하는 안전성 및 유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통상 확증 임상이 종료되면 디지털 치료제로 식약처 허가 신청만을 앞둔다. 이모코그의 코그테라는 향후 치매 치료에 대한 패러다임이 휴먼 서비스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시니어케어연구회 사사키 노리코(前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 [사진=요양뉴스]
한국보다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일본은 지역사회에서 돌봄의 디지털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시니어케어연구회 사사키 노리코 교수는 ▶나가노현 이나시의 DX로 행복 만들기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의 디지털 데이터로 질병 악화 예방 ▶아오모리현 아오모리시의 MaaS IoT로 건강마을 만들기와 같은 지역사회에서 활용되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사례 3가지를 발표했다.
이 지역들은 모두 고령화율이 높은 지역에 디지털 헬스케어를 도입해 돌봄 서비스의 편의성을 높였다. 예컨대 이나시는 교통 약자들이 많았고 필수 돌봄 서비스 활용을 위한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이 많았다. 이에 이나시는 AI로 효율적 배차와 합승 택시로 가격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택시를 시범사업으로 실시했다.
본격화된 디지털 헬스케어... 다양한 연구 진행되고, 실현되고 있다
강남대학교 미래복지융합연구소 노영희 교수. [사진=요양뉴스]
마지막 세션에서 더욱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실증 사례들이 다뤄졌다. 강남대학교 미래복지융합연구소 노영희 교수는 디지털 포용성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미래복지융합연구소를 소개했고, 이 연구소에서 최근 추진하는 디지털 솔루션 실증 사업도 밝혔다.
그중 하나는 노인돌봄 제공자에 대한 돌봄 플랫폼이다. 실제로 요양보호사, 생활지원사와 같은 돌봄 제공자들은 신체적, 경제적,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래복지융합연구소는 이들을 대상으로 각 영역 만족도를 측정해, 이 영역이 행복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기반의 데이터 수집 기술은 “향후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확언했다.
한국에자이 김은호 이사. [사진=요양뉴스]
이어 글로벌 치매의약품 1위기업인 에자이의 한국에자이 김은호 이사는 에자이가 구축한 시니어 헬스케어 생태계를 설명했다. 한국에자이는 노인 인지기능 강화와 디지털격차 해소를 통해 시니어들의 건강한 삶을 응원하고자 에코시스템 시범사업을 기획해, 지역복지관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프로그램을 맞춤 제공하고 있다. 뇌 건강 측정 도구 '코그메이트(CogMate)나 치매 조기 발견 및 예방 목적의 인지 훈련 도우미 챗봇 서비스 ‘새미톡’이 에자이의 대표적인 실증 예시다.
이 밖에도 개막 첫날 지역사회 경로당의 디지털 전환 모델, 씽큐테이블을 활용한 치매예방 에코시스템 등이 공유됐다. 이번 SBIC 2023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주관하는 대한의료정보학회 추계학술세미나와 대한디지털치의학회, 한국체외진단의료기협회, 대한미용의학회 등이 주관하는 각종 국제 세미나 및 네트워킹 행사를 동시에 진행 중이다. 관련해 의료기기, 제약, 바이오 관련 유망 기업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내달 1일까지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들을 계속해서 만나볼 수 있다.
최연지 기자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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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인물iN]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사회복지사가 걸어온 10년은?
[편집자주: ‘복지인물iN’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에 감사하며 복지와 관련된 인물의 업적, 비하인드 등을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소식으로 매주 찾아오겠습니다. 복지의 여정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김주흥 서울시부시장, 한노병원 사무장 레케보(왼쪽) 씨에게 감사장 수여 [사진=서울기록원]
현재 상급종합병원에서는 모든 환자가 질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심리·사회적 문제도 해결한 후 집으로 돌아간다. 의료사회복지사들이 병원에서 환자들의 의료 외적의 아픔을 진단하고 맞춤형 돌봄을 연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의료복지 시스템은 외국인 곧프레드 레케보(Gotfred Rekkebo, 1911~1993) 덕분이다. 그는 국내 최초의 의료사회복지사로서,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을 동원해 사회복지의 기반을 다졌다.
우리나라 의료사회복지는 레케보가 구상한 그대로 실현됐다. 그는 제대로 된 교육 인재가 세상을 도울 수 있다고 믿고, 이론 중심의 한국 사회복지교육에서 실무와 사례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기로 했다. 손수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회복지 실천에 대해 가르치고, 병원에 의료사회복지사로 투입했다. 교육비 등 재정 도움은 직접 캐나다의 한 협회를 만나 이뤄냈다. 그는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복지를 이끌어갈 한국노인복지회 조기동 회장을 발굴하기도 했다.
사회복지의 기반, 실용적 교육은 그의 손에서
한국전쟁은 국제사회의 긴급 구호와 지원을 불러들였다. 곧프레드 레케보도 노르웨이 의료팀의 일원으로 1951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남성간호사였다. 노르웨이 야전병원에서 7개월간 의무요원으로 근무하고 돌아간 그는 4년 만에 다시 한국에 왔다. 1955년 한노협회(Norwegian Korean Association,NKA)의 대표로 레케보가 1967년까지 12년간 일하면서 한국 의료사회복지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는 간호사였으나, 종교인으로서 본래 맞춤형 사회복지(케이스워크)를 지원하는 기독교 사회복지사의 교육과 훈련 시설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사업의 기반을 한국에 정착해 펼친 까닭은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가 발전할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해서다. 이미 중국에서 인재 양성에 대해 한 차례 실패를 경험한 레케보는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한국은 사회복지를 교육하는 대학교들이 설립돼 있었다. 아쉬운 점은 실습보다는 이론으로 구성돼 실용적이지 못했다. 레케보는 한국이 사회복지의 필요성은 인지했으나, 교육의 방법이 잘못됐다고 느꼈다. 이를 증명하듯 사회복지 전공을 하고도 실업자로 살던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는 이론이 아닌 사례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봤다.
1958년 7월 그는 초보자 과정 강좌를 개설해 사회복지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 강좌를 이수한 2명은 한노병원에서 의료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됐다. 이 밖에도 그는 계속해서 사회복지사를 배출했고, 그들은 국립의료원, 서울시립병원에서 환자와 그 가족들을 도왔다. 레케보 또한 일주일에 하루 반나절을 국립의료원의 환자들을 위해 일했다.
당시 한국전쟁 전후, 전염병인 결핵으로 고생했던 한국의 입장에서 노르웨이인의 도움은 대단한 업적이었다. 병원에서 질병 외적인 것까지 돌봤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했다. 그는 가난한 결핵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서 마포구에 급식소를 열어 매일 3천 명가량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배려해 남녀 따로 두 채의 집을 세내어 보호소를 열었다.
사회복지사를 고용하고 훈련시킨 든든한 뒷배... USCC의 지원받아
사실 이 모든 의료사회복지의 발전은 레카보의 의지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물적자원이 사전에 준비됐어야 실천에 옮길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속한 한노협회는 결핵사업 지원만으로도 재원이 모자랐다.
레카보는 물적자원을 제공할 또 다른 후원자가 반드시 필요했다. 도움이 가장 절실하던 시기 1956년 레카보는 사회복지사를 고용하고 훈련할 비용을 대줄 사람을 찾았다. 우연히 조우한 캐나다유니테리언봉사회(Unitarion Service Committee of Canada, USCC) 사무총장 롯타 히지마노바(Lotta Hitschmanova) 박사가 경제적 지원을 하기로 한 것이다.
캐나다유니테리언봉사회는 1952년 부산에서 처음 구호를 시작한 외원기관으로 한국 최초로 학교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었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지원 분야를 찾고 있었는데, 히치마노바 박사는 레카보가 제시한 의료사회복지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훗날 레카보의 기록에는 이 둘의 만남을 두고 이렇게 서술했다. “마치 필요(need)와 도움(help)이 완전하게 서로를 위해 맞춤이 된 것과 같았다.”
둘의 만남 이후 노한협회는 한노병원에 약국조제실을 건립하도록 1957년 1만 2천 달러를 받았다. 1958년 레카보가 시행한 사회복지사 고용과 초급과 과정 교육도 캐나다유니테리언봉사회의 5천 달러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 이후로도 몇 년간 기금 지원은 끊이질 않았다.
이렇듯 레케보는 국내 1호 의료사회복지사로서, 약 10여 년간 한국에서 인적·물적자원을 확보해 후배 의료사회복지사를 배출하는 데 힘썼다. 누구보다 물심양면 사회복지 발전에 지원을 더한 그다. 오늘날 사회복지사로서의 전문적 지위와 존경은 이런 그의 업적 위에 쌓여 있다.
최연지 기자
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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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Talk] 고집불통 꼰대 할아버지가 사랑받는 이유.... 최고의 이웃 ‘오토라는 남자’
[편집자주: ‘무비Talk’은 요양 및 시니어 관련 무비를 소개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는 코너입니다.]
오토라는 남자 영화 포스터 [사진=소니 픽처스]
이웃들은 오토라는 남자는 고집불통 꼰대라고 욕한다. 오토는 자신의 집 대문 앞에 자전거를 세워 두는 청년도 이해할 수가 없고, 왜 이렇게 분리수거는 엉망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사실 오토는 반년 전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한 후, 세상이 너무 싫다. 당연히 다정할 여유는 사치다. 아내를 따라가려 전기 요금도 해지하고 목을 매달 준비를 한다. 그런데 마을의 규칙을 어기고, 도움이 필요한 새로운 이웃들을 만나다 보니 할 일이 자꾸만 생긴다.
<오토라는 남자>는 단절된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는 오토의 신념과 역할을 통해 원활한 소통이 불러오는 이웃 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일부 이웃들은 오토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꼰대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매일 아침에 마을을 순찰하는 동네 지킴이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뚜렷하게 드러나는 오토의 다정한 모습은 진짜 어른의 모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딱 규칙은 지켜야, 쓴 만큼만 내야 하는
규칙이 조금 어긋나는 꼴도 못 보는 오토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자신의 목숨을 거둘 밧줄을 사는데도 그는 규칙을 내세운다. 분명 계산대에 5피트만큼 가져왔는데 마트 직원이 5피트 단위로는 제품을 판매할 수 없다며, 판매 단위에 맞춰 돈을 더 받으려 한다. 점장까지 찾으며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린다. 돈을 지불할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다. 오토이기에 ‘엉망인 동네’는 참을 수가 없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의 입장에서 동네가 엉망인 꼴은 마찬가지다. 자기 죽음으로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주변 정리를 하려던 때의 일이다. 전기, 가스, 전화를 끊던 도중 다툼이 또 일어난다. 아니 전화 요금을 해지한다는데, 쓰지도 않은 며칠 치가 더 부과돼 오토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동네 주민과 오토간 사이가 나쁜 이유가 무엇일까. 오토가 마을을 정직한 동네로 지켜야 한다는 철칙을 가졌기 때문이다. 실은 그는 주민들을 틈만 보이면 구박한다. 주차를 제대로 해야, 통행에 불편함을 주지 않을 수 있어서다. 누가 시설물을 고장 내지는 않았는지 매번 확인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마을의 양심과 규범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 그의 일과다. 그래서인지 마을은 그를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같이 사니까, 돕고 도와야
그의 신념은 본인뿐만 아니라 주민 모두가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오토는 자처해서 누구보다 솔선수범해 마을 돌본다. 그런데 오토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새로 이사 온 부부다. 그들은 오토가 매일 주차 순찰을 하던 곳에, 엉망으로 주차하려 했다. 동네를 어지럽힐 수는 없으니, 그는 이웃부부의 주차를 직접 도와주게 된다.
붙임성이 좋은 이웃 부부는 계속해서 렌치, 사다리 등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한다. 오토는 이들에게 운전도 가르쳐주고, 부부가 외출할 때면 손녀딸과 같은 아이들을 놀아 주기도 한다. 꼰대라고 느꼈던 그의 행동은 어느새 그가 사랑받는 이유가 되어버린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 밖에도 오토는 머물 곳 없는 트렌스젠더를 위해 집을 내어주고, 뇌졸중과 파킨슨병으로 힘들어하는 노부부를 위해 대신 나쁜 놈들과 맞서 싸운다. 참견쟁이, 흔히 꼰대 문화라고 취급받던 그의 행동은 사라져가는 진짜 어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과 마주쳐도 눈 맞춘 인사 한번 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과 대조된다.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주민들은 똘똘 뭉쳐간다. 반면 영화 밖의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관계는 끊어지고, 소통의 부재로 세대 갈등도 깊어져 간다. 이 세상에 꼰대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조언을 들으려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닐까.
최연지 기자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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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 BY CARE] 매주 방문목욕 받고 싶은데, 센터에서 거부합니다
[편집자주: 고령사회 속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중요성은 확대되고 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장기요양급여는 등급판정위원회의 장기요양등급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내 가족의 장기요양등급에 대해 고민이 많은 이를 위해 마련한 ‘케어상담소’입니다. 커뮤니티에서 실제 고민을 발굴해서 방법을 찾아보고자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케바케(CARE BY CARE)’는 각각 다른 케어를 제공하면서 장기요양등급 결과를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CARE CASE
어머님께서 작년 말에 장기요양 4등급을 받으셨습니다. 지금 목욕차 서비스 2번 받고 있는데, 방문요양 대신에 목욕을 매주 받고 싶다고 하시네요. 아는 재가복지센터에서는 목욕만 4번 받으면 방문요양은 받을 수 없다고 하네요.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방문도 안 되고, 꼭 5번은 방문요양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는데... 어머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목욕 서비스만 4번 받기는 어렵겠죠?
방문목욕차량 [사진=연합뉴스]
POINT1 방문목욕 한 달에 4번까지 쓸 수 있어
방문목욕은 가정에서 2인 이상의 요양보호사에게 받는 목욕 서비스다. 어르신의 건강 상태와 환경에 맞춘 목욕과 실금, 욕창 등으로 인해 손상된 피부 관리도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해당 급여는 수급자의 월 한도액 내에서 주 1회까지 이용이 가능하도록 제한됐다. 딱 한 달에 4번이다. 다만 피부의 건강 유지가 불가피한 경우에는 초과 신청할 수 있다.
그 밖에 4번 이상은 월 한도액이 모자라지 않더라도 급여 적용을 못 받는 것이다. 월 한도액이 예컨대 4등급의 경우 재가급여 월 한도액이 130만 6200원이다. 방문목욕 비용은 시간, 차량 여부, 인원 등 급여제공방법에 따라 금액대가 상이하나, 최대 1회당 8만 2160원이다. 즉 4번을 다 써도 정확히 97만 7560원. 월 한도액이 100만 원에 가깝게 남는 셈이다.
POINT2 월요일은 방문목욕, 화·수·목·금은 방문요양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급여의 유형과 관계없이 월 한도액안에서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주야간보호와 방문요양을 병행하면 한도액을 20% 증액하는 등 다른 급여를 함께 이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방문목욕 급여를 쓴다고 해서, 다른 방문요양 혜택을 못 받는 것이 아니다. 방문요양으로 돌봄을 받을 시간이 줄어들 뿐이다.
앞서 설명한 4등급 수급자의 경우 방문목욕을 매주 이용하고도, 남은 월 한도액 97만 7560원으로 나머지 요일에 방문요양을 신청할 수 있다. 방문요양 이용 시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남은 월 한도액은 통상 한 달에 18회가량 사용할 만한 정도다. 보통 3·4등급 수급자는 방문요양 180분을 사용할 수 있는데, 비용은 1회당 5만 2880원이기 때문이다.
POINT3 한 달에 60시간 미만 근로는 요양보호사가 기피해
수급자가 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장기요양등급, 유효기간, 개인별장기요양이용계획서를 받는다. 그중 정해진 장기요양급여의 종류 및 내용에 따라, 수급자가 적절한 장기요양기관을 선택해 급여 계약을 체결해야만 장기요양급여를 이용할 수 있는 구조다. 협상 과정에서 재가복지센터는 방문목욕 수급자의 방문요양 이용에 대해 계약 체결을 거절할 수도 있다.
방문목욕을 한 달에 4회를 이용하면, 보통 방문요양 급여 이용은 60시간 미만으로 이뤄진다. 이는 요양보호사 입장에서 선호하지 않는 일자리다. 근로기준법에 의해 주휴수당과 연차수당은 주 15시간 혹은 월 60시간 이상 근무하는 근로자에게만 제공되기 때문이다. 퇴직금도 60시간 이상 일한 달이 12달 이상이어야만 지급된다.
위 사례는 급여종류 변경에 관해 급여제공기관과의 마찰을 빚은 보호자의 고민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방문목욕과 방문요양은 병행할 수 있고, 수급자의 바람대로 방문목욕을 매주 진행해도 월 한도액 내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노인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장기요양기관의 관행이 종종 있다. 반드시 수급자는 정당한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장기요양기관과 계약을 체결하도록 해야 한다.
최연지 기자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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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요양 미이용자 5명 중 1명, 수급자가 보내는 위험신호는?
장기요양 미이용자 5명 중 1명은 등급을 받고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전체 노인 중 서비스 미이용자가 20% 이상으로 보고됐다. 돌봄을 꺼리는 수급자들도 늘었다. 이처럼 미이용자가 계속해서 생기는 까닭은 돌봄 제도가 가지는 사회적 낙인, 현행 급여제도의 한계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미이용자 꾸준히 문젯거리 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 또는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혼자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을 제공하는 제도로, 정부는 개정된 법에 따라 2019년부터 3년마다 장기요양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7월 장기요양 수급자와 기관, 장기요양요원 등 총 1만 1천 명을 대상으로 '2022년 장기요양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최근 관련 보고서를 공개했다.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조사시점에 전체 장기요양 등급인정자 중 77.5%는 급여를 이용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22.5%는 급여를 이용하지 않았다. 5명 중 1명꼴로 돌봄 공백에 놓인 셈이다. 2019년 실태조사에도 동일한 비율을 보였고, 미이용자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21년 국정감사에서도 국민의 힘 이용호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북 남원·임실·순창)은 더 나은 돌봄서비스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이 의원은 “매년 신청자의 15% 이상이 노인장기요양등급 인정을 받고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요양병원으로 입원하거나 가족돌봄을 받는다. 최근 5년간 미이용자가 71만 명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사회적·국가적 책임이 부족함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 아니고 집인 데도 돌봄 거부한다... 건강한 5등급도 외면
미이용자 문제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수급자들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이 가지는 사회적 낙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돌봄시설에 부모를 모시면 불효라고 생각하는 사회 인식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미이용자의 이용 패턴도 유의미한 변화를 보였다.
실태조사 추이를 비교해보면 장기요양 미이용자의 거주지 중 집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 장기요양 미이용자 중 일반 가정 거주자는 2019년 52.2%에서 2022년 71.2%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요양병원 입원한 미이용자는 47.2%에서 28.6%로 대폭 감소했다.
다시 말해 기존에는 요양병원에 가느라 장기요양급여를 이용할 수가 없어서 미이용자로 남았지만, 현재는 집에서 머무르면서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장기요양급여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도 달라졌다. 미이용 이유로 과거에는 병원 입원을 꼽았지만, 지금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꺼려져서’가 1위를 차지했다.
더불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꺼린다는 응답은 장기요양인정등급이 5등급인 경우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장기요양에서 5등급 인정자는 치매 이외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비교적 건강한 노인일수록 돌봄 필요성을 강하게 부정하며 서비스를 받는 부문에 대해 심리적 저항감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추진하지만, 여전히 집에서 불편한 사람도 있다.
또한 병원 입원으로 인한 미이용자는 장기요양 인정등급이 1·2등급인 경우가 많았다. 요양과 의료의 필요도를 모두 가지고 있는 노인이 요양급여의 분절 문제로, 요양병원만 이용할 수 있다는 한계점도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지적해 온 문제다.
돌봄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의료 필요도를 수용하도록 장기요양 제도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한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요양뉴스와의 통화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이용지원부를 운영해 장기요양 미이용자를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연지 기자
2023.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