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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일자리, ‘실업급여’도 ‘산재보상’도 사각지대
노인들이 실업급여와 산재보상을 받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 노인들이 비자발적인 근로 중단에도 구직활동 지원금(이하 실업급여)을 받지 못하고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해도 산업재해로 인정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65세 이후 재취업한 노동자의 고용보험 적용을 제외하는 ‘고용보험법’을 개정하고 산업재해 인정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월급받은 노인, 실업급여 제외된 것도 모자라 산재도 못 줘
고용보험법 제10조 2항은 65세 이상 노인의 실업급여 수령을 제한한다. 예외적으로 65세 이전에 취업해 같은 회사를 계속 다녔을 경우만 65세 이후에 실직해도 실업급여를 수령할 수 있다. 이에 지난 3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65세 이상 신규 취업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보험법 제10조 2항의 연령 기준을 상향하는 법령 개정을 추진하라고 권고했다.
고용보험법 개정입법 촉구 연대회의도 4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나이 제한에 대해 지적하고 삭제를 촉구했다. 연대회의는 전국시니어노조 등 고령자단체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가사·돌봄유니온 등 노동단체를 포함한 123개 단체가 결성한 연합체다. 이들의 비판 골자는 은퇴하고 새 일자리를 찾은 고령자는 대부분 저임금 단기계약직일 수밖에 없는데, 실업급여를 금지한 법령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고용보험 가입 이력 조건을 충족한 노인과 청년은 공공 일자리에서 똑같이 일했어도 실업급여는 청년만 수령 가능하다. 실업급여는 180일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된 이력이 있고, 권고사직이거나 계약 종료 등 비자발적인 근로 중단이면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산업재해보상 보험급여(이하 산재) 적용도 쉽지 않다는 게 문제점으로 꼽힌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A 씨는 보건복지부 주관 2022년 노인 일자리 사업에 선정됐다. 이후 월급 29만 원을 받기 위해 하루 3시간 쓰레기 줍기 활동을 하던 도중 지나가던 차량과 충돌해 사망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규정한 산재 보상 대상자는 아니었다.
결국 A 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는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한 근로의 제공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노인복지법에 따라 노인의 봉사활동을 통한 사회참여 확대를 위해 실시된 공익사업의 일환”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노인 일자리·사회활동 지원사업’을 공공형·사회서비스형·시장형 등으로 분류해 시행하는데, A 씨의 일자리는 공공형으로서 사회활동 지원사업에 해당한다. 공익성이 있는 봉사활동을 한 후 소정의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근로가 아니다. 다만 노인들이 일반 근로와 동일하게 월 보수를 받고 일을 했다는 측면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고령층 일자리 ‘방문요양보호사’도 상황은 비슷해
고령자 취업률이 높은 돌봄 직종에서도 이런 사각지대는 확인된다. 요양뉴스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지난해 10월 31일 기준 국민건강보험공단 인력신고 등록기준 자료 따르면 장기요양기관에 종사하는 요양보호사는 대부분 고령층이었다. 60대 이상이 64.3%로 총 40만 명이 넘었다. 대표적인 고령층 일자리인 요양보호사, 그중 방문요양 종사자의 경우 실업급여 미적용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방문요양급여 특성상 장기요양 수급자의 병원 입원, 사망, 기관 이동 등으로 비자발적인 퇴사가 만연하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장기요양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방문요양보호사 중 지난 1년간 1개월 이상 일을 쉬었던 비율은 15.1%인데, 이중 근무 중단 사유의 절반 이상이 이용자 요청 등 비자발적 중단이었다. 그런데 고령자로서 실업급여 대상자도 아닐 시 소득 보장에 대한 법적 보장 체계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산업재해 신청도 어렵다. 요양보호사는 업무 중에 이용자를 부축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등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할 수도 있다. 2021년 서울시 장기요양요원 실태조사결과 26.2%가 일하다 아픈 경험이 있었으나 이 중 단 7.6%만 산재 신청을 했다. 방문요양보호사는 특히 ‘하루 3~4시간의 적은 근무시간’, ‘노인성 질환 가능성’, ‘업무 연관성 입증의 어려움’ 때문에 산재 신청까지도 이어지지 않았다.
즉 산재 인정률이 매우 낮은 상황이다. 실례로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는 요양보호사 법률 권리 구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5명 요양보호사에 대해 근골격계 산재 신청을 시도했지만, 요양원에서 4년을 근무하다가 무릎에 통증을 발견한 요양보호사 1인만 산재 인정을 받아냈다. 이에 종합지원센터는 “다른 요양보호사의 경우 업무 부담보다 나이 등 개인적인 요인이 부각되어 아쉽게 인정받지 못했다”며 “요양보호사의 업무 부담이 더욱 주목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달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내·외국인 인구추계 2022~2024’에 따르면 내년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66살 노인 빈곤율이 37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1위다. 이로써 노인 일자리 문제는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 환경에 떠밀려진 노인을 위한 관련 법 제도 개선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최연지 기자
2024.04.18
51830
[CARE BY CARE] 요양등급이 하락하면 요양원에서 쫓겨나나요?
[편집자주: 고령사회 속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중요성은 확대되고 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장기요양급여는 등급판정위원회의 장기요양등급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내 가족의 장기요양등급에 대해 고민이 많은 이를 위해 마련한 ‘케어상담소’입니다. 커뮤니티에서 실제 고민을 발굴해서 방법을 찾아보고자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케바케(CARE BY CARE)’는 각각 다른 케어를 제공하면서 장기요양등급 결과를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CARE CASE
2년 전에 장기요양 2등급을 받으신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십니다. 다른 분들보다 갱신 주기가 빨리 돌아온 것 같긴 한데, 이번에 공단 직원분들이 몸 상태를 보고 가셨습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등급이 떨어질까 걱정됩니다. 지난번에는 누워만 계셨는데 요즘엔 거동은 가능하세요. 그렇지만 아예 긍정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지금 배변 실수도 잦고 때때로 인지를 잘 못하십니다. 그런데 의사와 공단 앞에서 할아버지가 “건강하다”고 자신하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요양원에 계속 모실 수 있도록 등급이 하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중입니다. 아래등급으로 내려가면 어떡하죠?
[사진=이미지빙크리에이터]
POINT1 등급 재심사 시기는 사람마다 달라
장기요양등급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요양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필요하다. 요양등급은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해 1~5등급과 인지지원등급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등급 판정자는 항상 동일한 컨디션이 아니기 때문에 공단은 등급을 재심사하도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등급판정에 유효기간이 존재한다.
상황별 등급 유효기간. [자료=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령, 가공=요양뉴스]
이 유효기간은 상황별로 다르게 적용된다. 대표적으로 최초 등급 판정 유효기간은 일괄적으로 2년이다. 또한 갱신 시 1→2등급 또는 5→3등급으로 등급이 달라지는 경우에도 2년이다. 반면 갱신 시 이전과 동일 등급을 유지했을 때 1등급은 4년, 2~4등급은 3년, 5등급 및 인지지원등급은 2년으로 각 상이하다.
갱신은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90일~30일 이전에만 신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등급 변경을 목적으로 유효기간이 1년 이상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공단의 재심사를 요청할 시, 이는 장기요양등급 변경신청에 해당한다. 등급 변경은 유효기간이 2년이다.
POINT2 의사가 증빙하는 객관적 서류 구비하면 돼
모든 등급 판정자는 일상생활수행능력을 신체기능, 인지기능, 행동변화, 간호처치, 재활 5개 영역별로 52개 항목의 판단 기준 및 척도에 따라 조사받는다. 이런 과정에서 등급 심사 대상자가 자신이 “건강하다”고 평가하면 등급 하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5개 영역 인정 조사표. [사진=국민건강보험공단]
하지만 공단 직원은 객관적 지표로 평가하게 되어 있으므로 등급 하락 우려 시 현 건강 상태를 증명하는 서류를 별도로 제출하면 된다. 대표적인 게 환자의 상태를 잘 알 수 있는 의사소견서로서 갱신 신청 시 필수 서류로 꼽힌다. 만약 치매 증상을 보이는 경우 보건소나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은 후에 진단명과 진단 경과를 담은 치매진단 서류도 발급받을 수 있다.
POINT3 급여종류·내용 변경 신청만 하면 돼
원칙적으로 시설급여는 1~2등급만 이용 가능하다. 3등급~5등급, 인지지원등급이 요양원을 이용하려면 본인부담률이 100%인 셈이다. 다만, 시설급여 소지자가 갱신 절차에 따라 1~2등급에서 3~5등급으로 하향되더라도 보살필 가족이 없는 경우 등 특정 조건에 해당하면 동일하게 본인부담률 20%만 지불하고 시설급여를 제공받을 수 있다.
급여종류·내용 변경 신청서 예시. [사진=국민건강보험공단]
그러므로 갱신등급판정에서 재가급여 이용자로 등급 하락을 경험한 장기요양 수급자는 급여종류·내용 변경을 신청하고,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등급판정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시설급여 필요 여부를 판단해 통보할 것이다.
위 사례는 요양등급 갱신에 관한 문의다. 등급 재심사 시기는 최초 신청인지 아닌지에 따라 구분되며 현 등급과 갱신 등급의 변동 여부, 등급 변경 신청도 영향을 미친다. 보호자는 이 사실을 잘 파악하면서 현 일상생활 수행능력 정도와 등급 판정 결과가 다르게 나오지 않도록 서류 제출에 힘써야 한다. 또한 시설급여에서 탈락하더라도 급여종류·내용 변경 신청으로 요양원을 이용할 수 있다.
최연지 기자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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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주야간보호시설 몇 군데”…통계별 급여제공기관 수 왜 이렇게 차이 크게 나나?
장기요양기관 개소가 통계별로 상이해 이용자 사이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요양업계 일각에서 정확한 수치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 16일 요양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제공기관을 조사하는 기준에 따른 차이 때문으로 밝혀졌다.
통계는 급여지급일에 따라 분류했지만 누리집은 이용자 편의를 위한 수치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2022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연보’는 챕터별 장기요양기관 수가 극명하게 갈렸다. 서울 방문요양기관 수를 두고 장기요양기관 급여 현황에서는 6188개소로 수록했지만, 장기요양기관 및 인력 현황에서는 2460개소로 보고했다.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장기요양 수급자와 보호자를 위해 운영 중인 ‘장기요양기관 찾기’ 검색서비스 확인 결과, 서울 방문요양기관 수는 2292개소였다.
이 같은 수치는 급여기관을 세는 방식에 따른 요인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계연보 중 장기요양기관 현황에서 정의한 기관 수로 파악한다면 서울에서 방문요양급여를 제공하고 있는 제공기관의 총합은 2460개소이다.
다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요양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지급해야 할 급여제공기관의 수로 집계하면 수치는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공단은 장기요양기관 서비스 비용에 대한 청구비용을 매달 지급한다. 그러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급여제공기관이 비용 청구를 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국민건강보험법은 기관의 청구 시효를 3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법률적 문제 때문에 급여현황을 기준으로 한 통계연보의 수치(6188개소)는 본래 급여기관 수보다 과대 산출된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급여 현황에 따른 수치는 폐업했더라도 최근 3개년 내 수가 지급이 진행됐다면 전부 기관 수로 반영됐다”면서 “장기요양기관 찾기는 이용자의 편의를 위한 서비스로서, 공단 지사 직원들이 6개월마다 운영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기관 기호가 소멸하지 않았더라도 실질적인 운영 현황을 점검해 지금 현장에서 영업하는 기관 수만 표시한다”고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노인장기요양보험 누리집에서 제공하는 장기요양기관 찾기 서비스. [사진=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급여 현황에 따른 수치는 폐업했더라도 최근 3개년 내 수가 지급이 진행됐다면 전부 기관 수로 반영됐다”면서 “장기요양기관 찾기는 이용자의 편의를 위한 서비스로서, 공단 지사 직원들이 6개월마다 운영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기관 기호가 소멸하지 않았더라도 실질적인 운영 현황을 점검해 지금 현장에서 영업하는 기관 수만 표시한다”고 설명했다.
장기요양기관 노인복지법 적용 안 받는 경우도 있어
e-나라지표 통계에 의문시하는 민원인. [사진=e-나라지표]
또한 e-나라지표에서 제공하는 노인복지시설 현황에 따른 기관에 의문을 품는 민원인도 나오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의 장기요양기관 현황 기준 전국 주야간보호 기관 수는 5090개소다. 그런데 같은 해에 e-나라지표에서는 3035개소로 대폭 줄어 기록됐다. ▲방문요양 1만 6850개소→5808개소 ▲방문목욕 1만 1789개소→3394개소 ▲복지용구 1977개소→368개소로 급여종류 모두 기관 수가 본래보다 적게 잡혔다.
노인복지시설 현황. [사진=e-나라지표]
장기요양기관 현황. [사진=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같은 주야간보호센터기관이라고 하더라도 기관번호가 다르다”면서 “노인복지법에 따른 재가노인복지시설로서 장기요양기관을 운영한다면 기관번호가 2번이다. 그런데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설치 규정만 준용하면 기관번호가 3번이다. e-나라지표 통계는 기관번호 2번만 포함하고, 통계연보는 기관번호 2·3을 모두 포함된 수치”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재가노인복지시설은 동시에 장기요양기관이 될 수 있지만, 재가장기요양기관은 재가노인복지시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향후 금번과 같은 사례는 혼란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전망이다. 보건복지부가 2019년 노인복지법상 재가노인복지시설로서 인정받는 기관만 재가급여를 제공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장기요양기관 지정 갱신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제도 시행일인 2019년 12월 12일 이후, 재가급여기관은 반드시 노인복지법 설치 규정을 따라야 하므로 기관 번호 3번은 더 이상 설립되지 않고 있다. 이에 갱신 주기인 6년에 도달하는 2025년부터 e-나라지표 통계지표에 모든 재가기관이 집계될 예정이다.
통계 수치는 요양산업 전반을 파악하는 데 사용되므로, 통일되지 않은 자료는 업계의 혼란을 줄 수 있다. 이와 같은 고충을 배려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통계의 통일성을 강조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최연지 기자
2024.04.16
51841
[복지인물iN] 마이어즈 선교사, 친일파 ‘이완용 땅’에 우리나라 최초 사회복지관 ‘태화여자관’ 설립해
[편집자주: ‘복지인물iN’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에 감사하며 복지와 관련된 인물의 업적, 비하인드 등을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소식으로 매주 찾아오겠습니다. 복지의 여정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태화여자관 초대 관장인 마이어즈 선교사. [사진=태화여자관]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역사는 기독교의 한 종파인 감리교에서 비롯됐다. 감리교는 사회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한반도의 ‘삼일운동’과 ‘여성 인권’에 주목했다. 이에 3∙1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던 태화관(現 태화빌딩) 자리에 1921년 4월 4일 여성과 아동을 위한 대한민국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인 ‘태화여자관(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을 개관했다.
설립의 주역은 태화여자관 초대 관장인 마이어즈(M. D. Myers, 재임 기간:1921.04.~1922.09.)이었다. 그는 부지 선정 등 태화 사회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특히 사회사업은 남존여비 사상의 영향으로 각종 교육과 문화 혜택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여성을 위한 복지 사업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게 태화여자관은 사회복지의 시작을 열었다.
태화여자관…역사적 명소에 설립
태화여자관이 100년이 넘게 명맥을 이어가는 데 비해, 마이어즈 초대 관장의 재임 기간은 2년 미만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 그런데 그의 업적은 아직도 널리 회자된다.
남감리회의 서울지역 여선교회 사업을 주관했던 마이어스는 1915년부터 선교 본부에 여성 사회관 건립을 위한 기금 요청을 했다. 사실상 그의 사업 구상으로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이 건립된 셈이다. 또 대표적인 업적은 복지관 부지로 ‘태화관’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회 현실에 대해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감리교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태화관 구건물.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태화관은 조선의 24대 왕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가 살아 본래 순화궁이라 불렸다. 이후 이곳은 1908년 친일파 이완용으로 소유주가 바뀌었고, 이후 임대돼 요릿집 명월관 분점으로 거듭났다. 명칭은 순화궁 내부의 연못인 ‘태화정’에서 따와 태화관이 되었는데, 태화관은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축하연을 베풀기도 한 곳이었다. 이에 민족적 명소로 꼽히자 마이어즈는 1920년 11월 이완용으로부터 태화관 부지와 건물을 구입하게 된다.
반면 명월관 측은 “임대계약이 남았다”며 건물을 비워주지 않았다. 결국 마이어즈는 태화관에서 한국인 둘과 함께 농성을 결심한다. 예컨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면서 거세게 영업을 방해하고자 나선 것이다. 싸움이 장기화되자, 양주삼 목사의 도움으로 여러 청년과 교인도 동원했다. 그 결과, 이 농성 3개월 만에 명월관이 식당 운영을 중단하면서 태화여자관의 부지로 변경됐다.
이 역사적 위치 덕분에 태화여자관은 사업 시작과 동시에 큰 주목을 받았다. 1921년 2월 27일동아일보는 “남감리교는 예수교 전도와 여자교육 및 여성운동을 위해 명월관 지점 태화관을 구입해, 태호여자관을 설치하다”라고 보도하기도 했었다.
여성 차별 대우,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변화시켜
과거 남성에 비해 여성들의 교육이 보편적이지 않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20년대 여성은 가부장 제도 속에서 인격과 인권을 무시당하는 일이 허다했다. 관련해 동아일보와의 한 인터뷰에서 마이어즈 관장은 태화여자관의 설립 목적을 설명하면서 “어두운 조선여자사회를 위해 새로운 빛을 주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민족적 어려움과 더불어 감리교는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를 중요한 사회문제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복지관 사업의 대부분을 여성에 주력했고, 부수적으로 아동 사업도 진행했다.
마이어즈가 개관과 동시에 전개한 사업은 ‘야학반’이다. 여성은 낮 동안 외출이 금지된 분위기였기에, 밤에만 외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태화여자관은 여성들이 자유롭게 나올 수 있던 시간대인 밤에 요리, 자수, 재봉 등 가정주부를 위한 실질적인 기술을 가르쳤다. 재봉은 주로 아이들 옷과 남자 셔츠를 만드는 교육과정이었다.
더 나아가 개관 1년도 안 돼서 정규 초등학교 교육과정의 여학교를 운영하게 되면서, 여성들도 교육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할 줄 알게 됐다. 이 교육과정들은 마이어즈 선교사의 단독 계획은 아니었다. 배움에 굶주린 한국 여성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개설됐다. 그만큼 필요했던 사업이었다. 뿐만 아니라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식을 했던 공간은 태화유치원 교실로서 아이들의 배움과 놀이의 장이 되기도 했다.
마이어즈 관장이 태화에서 소외된 여성과 아동을 위한 사업을 전개한 까닭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함이다. 이 사회적 약자를 향한 배려는 오늘날 전국 단위로 활성화되고 있다. 사회복지관은 과거 서울시 종로구의 태화관 단 1곳이었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어느새 2022년 기준 476개소가 설치됐다.
최연지 기자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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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Talk] 요양보호사와 어르신 관계는 가족 같은 남, ‘말임씨를 부탁해’
[편집자주: ‘무비Talk’은 요양 및 시니어 관련 무비를 소개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는 코너입니다.]
말임씨를 부탁해 포스터. [사진=씨네필운]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우리나라의 1인 세대가 1,000만 명인데 여기서 5명 중 1명 꼴로 70대 이상 노인이다. 이 때문에 노인을 돌보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이용률 또한 높아지고 있다. 노인 돌봄의 주체가 ‘가족’에서 ‘요양보호사’로 변화하는 셈이다.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에서도 말임이 효자인 척하는 외아들과 가족 행세하는 요양보호사 중에 누구와 살고 싶은지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이런 고령사회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나 자신을 돌보는 책임을 지우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
85세의 노인 말임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대구에서 홀로 살아간다. 그의 외아들 종욱은 이미 서울에서 가정을 꾸렸음에도 어머니가 걱정돼 가끔 본가에 들를 결심을 한다. 종욱이 “내려간다”는 소식을 전하면, 되려 어머니는 매번 “내려오지 말라”며 전화를 툭 끊는다. 그러면서도 말임은 아들이 온다는 소식에 기뻐한다. 이는 아들에게 부양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지점이었다.
아들을 외면하는 말임. [사진=씨네필운]
아들이 찾아온다는 소식에 계단을 청소하던 날, 말임은 넘어지고 만다. 이 낙상사고로 말임은 팔을 다쳐서 침대 위로 눕는 일도 힘에 부친다. 게다가 일시적으로 섬망 증세를 보이면서 언제 위험한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이에 아들 내외는 아픈 어머니를 홀로 둘 수는 없단 마음에 서울로 같이 올라가자고 말한다. 당연히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태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말임은 이 제안을 거부한다.
앞서 아들의 전화를 끊었을 때와 동일한 이유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 그는 아들 부부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점이 컸다. 게다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것은 물론 서울 아들 내외의 아파트에 사는 건 상상만 해도 갑갑할 따름이었다. 결국 이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종욱은 요양보호사의 힘을 빌려 어머니를 돌본다.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 부양이 요양보호사의 몫이 된 것도,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깊은 속내가 아닐까’라는 의문을 들게 한다.
남 같은 가족 vs 가족 같은 남
여기에 더해 이 영화는 가족의 진짜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특히 외아들 종욱과 요양보호사 미선이 말임을 대하는 게 대조적인 부분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외아들 종욱은 구직 중인 백수이면서 아내와 딸을 책임져야 할 가장의 무게가 무거웠다. 그래서인지 요양보호사 월급을 매달 150만 원씩 지급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결국 만기를 앞둔 적금을 해약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차에 더 저렴한 비용으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이용하기로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말임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집을 떠나기 전 인사하는 모습. [사진=씨네필운]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에게만 제공되는 돌봄 서비스이기에,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은 제도 적격자 여부를 위해 말임의 자택으로 찾아온다. 말임은 장기요양등급을 받을 정도로 건강 악화가 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날 종욱은 어머니에게 아픈 척을 하도록 요구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부양의 의무를 다하도록 노력한 일이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간병비를 아끼기 위해 어머니가 느낄 상실감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반면 요양보호사 미선과는 내내 얼굴을 보고 지내면서 자연스레 정이 들게 된다. 미선은 아침과 점심도 모두 챙겨 주기도 하고, 이웃에 사기를 당해 거액을 주고 산 옥매트를 환불하다 싸울 때도 옆에서 있어 준다. 그뿐만 아니라 갑작스럽게 쓰러진 말임을 발견하고, 치매를 앓는 그를 돌보기로 자처한 것도 미선이었다. 이에 말임은 자신의 보호자로 ‘가족 같은 남’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말임씨를 부탁해>는 젊은 세대 층의 돌봄에 대한 부담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예컨대 경제적 여유와 상황이 여의치 않은 아들이 어머니를 직접 돌보지 않고, 요양보호사에게 돌봄 업무를 전가했다고 해서 마냥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양보호사와 노인이 형성한 새로운 대안가족 형태의 도래는 사회시스템의 변화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나’ 혹은 ‘내 가족’을 돌봐 주는 요양보호사를 맞이할 때, 그를 고마운 마음을 담아 새로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최연지 기자
2024.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