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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장기요양보험 수기공모 체험수기 최우수상] 빛나지 않는 일에 빛의 길을 만드는 사람

  • 2024.01.0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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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지 않는 일에 빛의 길을 만드는 사람

  

2023 장기요양보험 수기공모 체험수기 최우수상 

 

글:이재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게 된 아버지. 

 

미국과 캐나다, 서울과 강릉 등 흩어져 살고 있는 자녀들은 홀로 계신 아버지를 케어하기 어려운 현실.
그러던 중, 응급수술까지 받게 된 아버지는 보살핌의 손길이 절실해졌다.
이정표 없는 캄캄한 시골 밤길 같은 아버지의 마음을 밝혀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홀로 남으신 구순의 아버지

앉아있는 어르신

“아지매! 아지매요!!!!”
일주일에 한두 번 동네 주민센터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귀가하시는 아버지가 휠체어 바퀴가 문턱을 넘기도 전 부르는 ‘아지매’는 4년째 아버지를 돌보고 계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호칭이다. 난소암으로 투병하시던 엄마의 장례식날 고운 옥색 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 영정사진을 들고 집안을 돌며 ‘흐윽 ~ 흐윽’ 신음 같은 울음소리를 두어 번 낸 것을 끝으로 단 한 번도 슬픈 내색을 하지 않고 잘 지내셨다. 솔직히 정말 잘 지내셨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외면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슬픔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과 캐나다에서 또 한국이라고는 하지만 서울과 강릉에서 자기 삶에 바쁜 우리 자식들이 '잘 지내신다’고 믿고 싶어했다는 게 더 정확하다. 거동도 불편한 구순의 아버지가 혼자 사신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떤 상황일지 모를 리 없는 우리가 각자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싶어 찾은 변명이라고 해도 되겠다.

“너그들이 사다 준 고등어구이에 니 엄마 친구 권사들이 해 준 밑반찬도 냉장고에 많이 있고, 주말에는 앞집 은행장네랑 텃밭에 상추 뜯어서 삼겹살 구워 먹었다. 아~~무 걱정 읍따!!” ‘아무 걱정 읍따!!’ 고 힘주어 말씀하시는 전화기 너머로 찬물에 밥 말아서 풋고추 된장 찍어서 드시는 모습이 오버랩되지만 자식 먼저 배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핑계로 슬그머니 걱정을 내려놓곤 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몸이 으슬으슬 춥고 옆구리가 불편하셔서 읍내 병원에 다녀가는 길이라고 하시더니 며칠째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아버지를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병명은 대상포진이었고 항바이러스 치료 시기를 놓쳐 완전한 치료가 불가능했다. 신경차단술과 진통제로 견디면서 극심한 통증에 걷기도 불편한 탓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급기야 어느 날 저녁에 텔레비전 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려다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허리와 척추에 금이 가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응급수술을 했지만 이후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은 몸 상태가 되셨다. 퇴원 후 살던 집이 편하다며 당신 집을 고집하셨고, 강원도에 사는 나는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아버지 집 근처의 이웃, 교회와 파출소, 119 등 모든 곳의 도움을 받으며 여의치 않을 때는 강릉에서 경기도로 달려가기를 출퇴근하듯 했다.

매일 아침 아버지의 안부를 확인해 주고 식사 준비를 도와줄 사람이 절실했다. 지역 매체에 구인 글도 올려보고 여러 곳에 마땅한 사람을 부탁했지만, 작은 면 단위의 시골 동네라는 지역적인 한계가 있었고, 무엇보다 아버지 집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분을 구하는 조건에 합당한 사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강원도와 경기도를 오가며 아버지의 일상생활을 챙기느라 나도 많이 지칠 무렵, 아버지 집 대문 앞에 놓여 있는 작은 명함 한 장을 발견했다.

그 사소한 발견은 아버지의 외롭고 적막한 삶에 웃음을 되찾게 해주었고 나에게는 가슴 조이며 고속도로를 오가던 힘든 일상에 종지부를 찍는 마술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당시, 명함 속의 기관은 노인을 돌보는 사람을 파견해 주는 인력파견업체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취지와 이용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캐나다에서 오래 거주한 나에겐 서류 하나하나가 외국어처럼 생소하고 절차 과정도 빨리 이해되지 않아서 바보같은 질문을 반복했지만 끝까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던 담당자의 친절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러나 절차에 따른 상담 후 담당자들에게 연결, 또 연결시켜 주는 친절함 덕분에 안내받은 대로 서류를 준비하고 신청, 승인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아지매’ 요양보호사님과의 첫 만남

어르신 식사 도와드리는 도우미

보호자 교육을 받으러 가던 날은 정말 기뻤다. 나 외 누군가 함께 아버지를 돌봐 주는 조력자가 생긴다는 사실이 너무 신나서 아무나 붙잡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외치고 싶었다. 드디어 요양보호사라는 직함을 가진 분이 센터장과 아버지 집을 처음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면접 당하는 신입사원처럼 긴장됐다. 딸이 신혼여행 다녀와서 인사드리러 오는 날에도 운동복 차림으로 계셨던 아버지는 좋은 옷으로 입혀 달라고 하셨다.

아버지께 요양보호사의 역할이나 직무 범위 같은 건 상관없었다. 누군가 집에 오시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고 위안이었다. 평생 양말 한 짝도 세탁기에 넣어 본 적조차 없던 아버지는 혹여 요양보호사가 힘들다고 그만둘까 걱정되신 듯, 불편한 몸이지만 스스로 무엇이든 하려고 애쓰셨다.

그런 아버지의 변화는 신체 건강과 더불어 정서적으로 무척 긍정적인 효과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런 순수한 마음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새로운 분으로 몇 번 교체가 되었고, 몸이 불편한 당신 때문에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의기소침해지시곤 했다. 4년 전 그날, 새로운 분이 오신다는 파견센터의 연락을 받고 몸에 밴 반듯한 예의가 인상 깊었던 그분을 처음 만났다. 그러나 겉모습만 보고 가족처럼 무작정 좋아했다가 ‘집이 너무 크다, 출퇴근이 멀다, 남자 어르신이라서 어렵다….’ 등의 이유로 그만두는 분들과의 안 좋은 경험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자꾸 거리를 두는 게 조금 미안했었다.

평범하지만 말씀을 나누는 내내 따뜻함이 느껴지던 그 요양보호사님과의 만남은 이정표 없는 캄캄한 시골 밤길 같은 아버지의 마음에 밝은 한 줄기 빛의 길을 터주는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이날 만남 전, 혹시 아버지가 요양보호사의 전문성과 역할을 혼동하지 않도록 다시 한번 다짐을 해 두었다. 요양보호사를 부를 때 절대 ‘아줌마’라고 하지 말고 성을 따서 ‘ 0 선생님’이라 부를 것, 친해지더라도 편함을 핑계로 가족처럼 대하면 안되고 친근하되 예의를 지켜 드릴 것, 식사나 간식 무엇이든 아버지 드시라고 주시면 꼭 그분께도 권할 것, 요양보호사는 아버지의 일상생활을 돕는 분이지 가사 도우미 ‘파출부’와 다른 점 등을 보청기를 낀 아버지 귀에다 대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야가 뭐라카노! 내가 경상도 양반집 장손이다. 허~”
아버지는 그렇게 큰소리쳐 놓고 첫 만남에서 ‘아지매요! 고향이 어디십니까!’라고 하셔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는 경상도 아버지 고향마을에서는 친척 혹은 이웃 아주머니들을 친근하게 부를 때 ‘아지매’라고 호칭한다고 요양보호사께 설명을 해 드렸다. 아지매 = 아줌마가 아님을 듣고 강원도 정선이 고향인 요양보호사님은 웃으며 이해하셨다. 나는 비록 몸이 불편한 부모를 맡겨야 하는 ‘을’의 입장이긴 해도 내 아버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또 어른으로 존중하는 분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늘 있었다. 그래서 첫 만남에서 그 면면을 꼼꼼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를 대하는 요양보호사님의 따뜻한 시선과 예의 바른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고 아버지도 매우 흡족한 표정이셨다. 게다가 요양보호사님은 얼마 전까지 치매를 앓는 친정어머니를 모셨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님 혹은 이름 세 글자보다 ‘아지매’가 훨씬 잘 어울리는 느낌의 요양보호사님의 고향은 강원도 정선, 아버지는 무뚝뚝한 골수 경상도 사람이라 음식이나 문화적인 차이, 대구에서 막 상경한 사람처럼 강렬한 경상도 사투리를 잘 받아들이실까 하는 염려도 있긴 했다. 특히 신부전증의 기저질환이 위험단계에 있는 아버지에게 식이가 약만큼 중요한 부분이라 까다로운 식사 준비를 잘하실 수 있을지도 관건이었다.

전문성을 능가한 진정성

어르신케어해드리는 도우미

사람은 겪어봐야 진가를 아는 법이다. 첫날 아버지의 건강과 기저질환 및 습관이나 식성을 듣던 태도가 좀 남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우리를 감동과 놀라움에 빠지게 한 요양보호사님의 반전은 전문성이라기보다 ‘정성’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사람들은 음식은 신선한 재료가 첫 번째로 맛을 좌우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정성’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요양보호사님은 그걸 현실에서 보여주셨다고나 할까. 다음날부터 출근하신 요양보호사님께 내가 처음으로 놀란 건, 우연히 본 작은 노트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식사 습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 내가 설명했던 내용을 포함하여 아버지를 돌보기 위한 내용이 빼곡하게 메모가 되어 있었다.

신장 기능이 20% 선인 신부전증에 대한 반찬 조리법과 좋은 채소, 금지해야 할 재료 등 금기와 도움 되는 음식 재료와 하루 일 중 꼭 해야 할 운동, 마실 물의 양까지 꼼꼼히 적혀있었다. 신장질환의 노인은 차를 포함해 마시는 물의 양과 종류도 엄청 중요하다. 그런 세세한 이야기를 다 하면 그만둔다고 할 것 같아 가능하면 생략했었다.

본인은 간호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실수로 건강에 해가 되지 않도록 그날 밤 자료를 찾고 메모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담당할 노인의 병증과 취향, 습관, 모든 채소를 익히고 고른 영양소 섭취가 중요한 신부전증을 앓는 아버지에 대한 그 자세만으로 나는 충분히 감사했다. 하루 3시간 혹은 4시간의 짧은 근무시간은 식사를 준비하고 일상을 챙겨 놓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아버지의 말벗이 되어주고 기본 반찬 챙겨 놓는 정도 이상은 기대하지 않았다.

요양보호사님은 필요한 부분은 당연히 공부해야 하고 작은 것이라도 어르신 생활에 도움 된다면 그 모든 것이 일상생활을 돕는 요양보호사의 임무라고 하셨다. 덕분에 아버지의 신장 기능은 ‘아지매’요양보호사님이 돌본 4년 동안 더 나빠지지 않았고, 95세에도 당뇨나 고지혈, 고혈압 같은 성인병도 없어서 의사들도 놀란다. 최선을 다하는 그 진정성이 전문성을 능가한 결과였다.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또 다른 장점은, 아버지가 딸보다 더 신뢰하고 모든 걸 맡겨도 요양보호사로서 지켜야 하는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부모를 둔 자녀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갈등이나 아버지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어떤 사소한 일도 자신의 삶의 경험에 따른 기준을 잣대로 삼지 않는 것이다. 항상 자녀들과 아버지 근황을 의논하고 함께 안전을 우선으로 잘 돌봐 주셔서 우리 자식들은 각자 자기 가정과 사회적 역할에 몰두하게 되어 여러 가정을 돌보는 셈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일상생활을 돕는 일이 힘든 것에 비해 전문성을 인정받지도 못하지만 ‘빛나지 않는 일에 빛의 길을 만드는’ 직업정신을 나는 ‘아지매’ 요양보호사님을 통해 보았다. 이제 약간은 느슨해도 되는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 일이라면 침대 방향 하나도 허투루 생각하는 법이 없다. 햇살이 화창한 쪽을 찾아 수시로 침대와 식탁 방향을 바꾸고 꽃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작은 꽃에도 정성껏 물을 준다. 시간 날 때마다 90년 묵은 아버지의 옛날 사진과 서류들을 정리하며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아버지 군대 이야기를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맞장구쳐주는 유일한 사람. 아버지의 베스트 프랜드이자 살갑고 따뜻한 딸, 정성을 다해 노인을 봉양하는 사랑의 실천자 ‘아지매’는 아버지가 95세로 장수하는 가장 큰 비결이라고 나는 자랑하고 싶다.

‘아지매’ 요양보호사를 만나기 전까지 요양보호사를 그저 고령의 중장년층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인, 노인 환자를 돌보는 사람 정도로 평가절하했었다. 그러나 ‘아지매’ 요양보호사를 보면서 사람이 사는 세상 모든 곳에는 전문성보다 진정성과 진심, 그리고 존중감이 훨씬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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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장기요양보험 수기공모 체험수기 최우수상] 빛나지 않는 일에 빛의 길을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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