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86
100세 시대 “스마트 시니어” 다 모였다... 실생활 키오스크부터 인지 프로그램 게임까지
“키오스크 많이 해봤지. 햄버거집에서 주문도 하고, 영화관에서 표도 뽑아봤어. 내가 택시 기사도 하고 쇼핑몰 사장도 하는데, 모를 수가 없지.”
26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서울 시니어 스마트 페스타’의 케어유 부스에서 만난 박상현(67)씨는 “이번 행사는 놀이공원 같다. 나는 디지털에 익숙해져 있어서 너무 쉽다”며 “그러나 10명 중 9명은 스마트 기기를 잘 다룰 줄 모른다”고 토로했다.
박 씨는 “이제 시대가 변했다. 모든 곳에 키오스크가 배치됐다. 달라진 세상에 적응 못하면 어리바리할 수밖에 없다. 노인들이 집에만 있지 말고, 스마트 체험을 통해 학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같은 시니어 스마트 행사가 자주 열리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주관한 ‘서울 시니어 스마트 페스타’는 스마트 기기 사용에 대한 어르신의 두려움을 없애고, 디지털 격차 문제를 줄이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진 행사에는 스마트 건강 부스,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경진대회 등이 열렸다. 특히 각 부스는 스마트 기기를 사용해 보려는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실생활 밀착형 디지털 교육... 식당에서도 병원에서도
과거에 비해 디지털(스마트폰·태블릿PC·키오스크) 기기들은 일상생활에 한층 가까이 들어섰다. 식당 주문에 이용되는 키오스크 활용과 교통수단 예매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는 어르신들도 늘어났다. 이에 각 복지관은 어르신 디지털 교육 실시에 나섰고,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도 스마트 복지 실현을 위한 ‘서울시 시니어 스마트 페스타’를 개최했다.
케어유 부스에서 어르신이 키오스크 사용법을 교육받고 있는 모습. [사진=요양뉴스]
이날 새벽부터 비가 계속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진대회 응원단과 참가자들, 관람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본격 스마트 경진대회에 앞서 22개 상설 부스에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케어유는 식당에서 사용되는 키오스크를 동일하게 구현한 부스로 어르신들의 눈길을 끌었다. 케어유의 키오스크는 병원 진료, 푸드코트, 고속버스 등 다양한 분야의 키오스크 체험을 제공했다.
한국에자이 부스에서 아하 디지털 매트를 체험 중인 어르신 [사진=요양뉴스]
식당에 이어 병원에서도 스마트 기기가 접목됐다. 한국에자이는 개인 맞춤형 치매·낙상 예방관리를 위한 아하 디지털 매트 시스템 활용법을 선보였다. 아하 디지털 매트는 LED 불빛으로 스퀘어스탭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어르신들은 이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다리에 힘이 없어 생기는 낙상사고를 방지하고, 불빛이 나오는 판을 밟으면서 기억력을 증진해 치매를 예방했다.
글로벌중소기업지원협회(GSBC) 회장이자, 강남대학교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 노영희 교수는 “아하 매트는 세계 10여 개 국가에서 다년간의 실증 연구를 통해 낙상 및 치매 예방효과를 입증한 스퀘어 스텝 운동을 세계 최초로 디지털화했다”며 “치매는 예방이 중요한 질병이다. 이번 행사를 통해 어르신들이 어떻게 예방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뇌 건강도 챙기고 게임도 하고
오후에는 스마트 경진대회가 열리자 부스에 몰린 인파가 경기장 가운데로 응집했다. 스프링 소프트의 ‘해피테이블’과 두뇌싱긋연구소의 ‘전국두뇌자랑’게임 6종이 경진대회 종목으로 선정됐다. 본 대회는 서울시 내 복지관을 이용하는 어르신 340여 명의 사전 신청을 받아 진행됐다. 이 어르신들은 각 복지관에서 자체 경기를 통해 선발된 기관 대표로서 행사에 참여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성북노인종합복지관 오보비(75)씨는 “이 나이에 기관을 대표하는 선수로 뽑혀 영광스럽다. 여기에 나오려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고 밝혔다. 성북노인종합복지관 이용민(77)씨는 “노인들이 특별히 참여할 행사가 없는데,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 게임을 준비하다 보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풍선 터트리기 준결승전. [사진=요양뉴스]
열정이 가득한 복지관 대표들은 디지털로 진행된 이번 게임 자체에도 흥미가 가득했다. 용산노인종합복지관 대표 서진순(76)씨는 “두더지 잡기 게임에 참여한다”며 “게임이 정말 재밌다. 1등을 목표로 왔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날아가는 새 먹이주기 게임에 참여하는 어르신 모습. [사진=요양뉴스]
각 게임은 디지털 패드로 진행돼 스마트 기기의 접근성도 높이면서 뇌 건강도 챙겨 어르신들의 호평을 자아냈다. 해피테이블의 풍선 터트리기 우승자 구문임(75)씨는 “3주 동안 하루에 2시간가량을 연습해서 건강도 좋아지고, 복지관 명예도 세워서 기쁘다”고 행복해했다. 두뇌싱긋연구소의 날아가는 새 먹이주기 우승자 이윤정(69)씨는 “호기심이 생겨 죽기 살기로 경기에 임했다. 치매가 겁이 났는데 인지능력이 길러질 수 있어 좋았다”고 답했다.
경진대회 심판으로 참여한 금천호암노인종합복지관 박소영 사회복지사(26)는 “요즘 복지관마다 키오스크 교육을 진행해 결코 어르신들이 기기 사용에 크게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기기 사용에 익숙해지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이번 행사가 어르신들이 새로운 스마트 기기를 마주하면서 디지털 기기 사용이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최연지 기자
2023.09.26
30785
100세 시대 “스마트 시니어” 다 모였다... 실생활 키오스크부터 인지 프로그램 게임까지
“키오스크 많이 해봤지. 햄버거집에서 주문도 하고, 영화관에서 표도 뽑아봤어. 내가 택시 기사도 하고 쇼핑몰 사장도 하는데, 모를 수가 없지.”
26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서울 시니어 스마트 페스타’의 케어유 부스에서 만난 박상현(67)씨는 “이번 행사는 놀이공원 같다. 나는 디지털에 익숙해져 있어서 너무 쉽다”며 “그러나 10명 중 9명은 스마트 기기를 잘 다룰 줄 모른다”고 토로했다.
박 씨는 “이제 시대가 변했다. 모든 곳에 키오스크가 배치됐다. 달라진 세상에 적응 못하면 어리바리할 수밖에 없다. 노인들이 집에만 있지 말고, 스마트 체험을 통해 학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같은 시니어 스마트 행사가 자주 열리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주관한 ‘서울 시니어 스마트 페스타’는 스마트 기기 사용에 대한 어르신의 두려움을 없애고, 디지털 격차 문제를 줄이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진 행사에는 스마트 건강 부스,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경진대회 등이 열렸다. 특히 각 부스는 스마트 기기를 사용해 보려는 어르신들로 북적였다.
실생활 밀착형 디지털 교육... 식당에서도 병원에서도
과거에 비해 디지털(스마트폰·태블릿PC·키오스크) 기기들은 일상생활에 한층 가까이 들어섰다. 식당 주문에 이용되는 키오스크 활용과 교통수단 예매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는 어르신들도 늘어났다. 이에 각 복지관은 어르신 디지털 교육 실시에 나섰고,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도 스마트 복지 실현을 위한 ‘서울시 시니어 스마트 페스타’를 개최했다.
케어유 부스에서 어르신이 키오스크 사용법을 교육받고 있는 모습. [사진=요양뉴스]
이날 새벽부터 비가 계속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진대회 응원단과 참가자들, 관람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본격 스마트 경진대회에 앞서 22개 상설 부스에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케어유는 식당에서 사용되는 키오스크를 동일하게 구현한 부스로 어르신들의 눈길을 끌었다. 케어유의 키오스크는 병원 진료, 푸드코트, 고속버스 등 다양한 분야의 키오스크 체험을 제공했다.
한국에자이 부스에서 아하 디지털 매트를 체험 중인 어르신 [사진=요양뉴스]
식당에 이어 병원에서도 스마트 기기가 접목됐다. 한국에자이는 개인 맞춤형 치매·낙상 예방관리를 위한 아하 디지털 매트 시스템 활용법을 선보였다. 아하 디지털 매트는 LED 불빛으로 스퀘어스탭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어르신들은 이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다리에 힘이 없어 생기는 낙상사고를 방지하고, 불빛이 나오는 판을 밟으면서 기억력을 증진해 치매를 예방했다.
글로벌중소기업지원협회(GSBC) 회장이자, 강남대학교 미래복지융복합연구소 노영희 교수는 “아하 매트는 세계 10여 개 국가에서 다년간의 실증 연구를 통해 낙상 및 치매 예방효과를 입증한 스퀘어 스텝 운동을 세계 최초로 디지털화했다”며 “치매는 예방이 중요한 질병이다. 이번 행사를 통해 어르신들이 어떻게 예방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뇌 건강도 챙기고 게임도 하고
오후에는 스마트 경진대회가 열리자 부스에 몰린 인파가 경기장 가운데로 응집했다. 스프링 소프트의 ‘해피테이블’과 두뇌싱긋연구소의 ‘전국두뇌자랑’게임 6종이 경진대회 종목으로 선정됐다. 본 대회는 서울시 내 복지관을 이용하는 어르신 340여 명의 사전 신청을 받아 진행됐다. 이 어르신들은 각 복지관에서 자체 경기를 통해 선발된 기관 대표로서 행사에 참여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성북노인종합복지관 오보비(75)씨는 “이 나이에 기관을 대표하는 선수로 뽑혀 영광스럽다. 여기에 나오려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고 밝혔다. 성북노인종합복지관 이용민(77)씨는 “노인들이 특별히 참여할 행사가 없는데,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 게임을 준비하다 보니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풍선 터트리기 준결승전. [사진=요양뉴스]
열정이 가득한 복지관 대표들은 디지털로 진행된 이번 게임 자체에도 흥미가 가득했다. 용산노인종합복지관 대표 서진순(76)씨는 “두더지 잡기 게임에 참여한다”며 “게임이 정말 재밌다. 1등을 목표로 왔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날아가는 새 먹이주기 게임에 참여하는 어르신 모습. [사진=요양뉴스]
각 게임은 디지털 패드로 진행돼 스마트 기기의 접근성도 높이면서 뇌 건강도 챙겨 어르신들의 호평을 자아냈다. 해피테이블의 풍선 터트리기 우승자 구문임(75)씨는 “3주 동안 하루에 2시간가량을 연습해서 건강도 좋아지고, 복지관 명예도 세워서 기쁘다”고 행복해했다. 두뇌싱긋연구소의 날아가는 새 먹이주기 우승자 이윤정(69)씨는 “호기심이 생겨 죽기 살기로 경기에 임했다. 치매가 겁이 났는데 인지능력이 길러질 수 있어 좋았다”고 답했다.
경진대회 심판으로 참여한 금천호암노인종합복지관 박소영 사회복지사(26)는 “요즘 복지관마다 키오스크 교육을 진행해 결코 어르신들이 기기 사용에 크게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기기 사용에 익숙해지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이번 행사가 어르신들이 새로운 스마트 기기를 마주하면서 디지털 기기 사용이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최연지 기자
2023.09.26
30803
[르포] 온보듬 대축제 다녀와 보니… 다같이 치매 친화적 환경 조성 나서
기억다방 푸드트럭 앞에서 이인영 구로구 국회의원과 경증 치매환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요양뉴스]
“오늘은 출장 왔어요”
19일 서울시 구로구 고척근린공원 광장에서 열리는 '온보듬 대축제’ 가는 길에 만난 이정순(76)씨는 “치매안심센터 내 커피숍에서 일하는데, 오늘은 이곳에서 기억다방을 연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씨는 “이따 같이 일할 동료가 도착한다. 기억다방은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이 운영하는 푸드트럭”이라며 “이번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들었다. 오늘 치매환자들과 가족들, 지역주민들이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 씨의 바람대로 행사는 이른 오전부터 모든 부스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한 부스는 긴 줄이 이어지자 대기자 명단을 적었고, 다른 부스는 줄이 다른 부스를 침범하려 하자 진행요원의 통제대로 줄을 섰다.
온보듬 대축제 입구. [사진=요양뉴스]
올해 1회를 맞은 '온보듬 대축제’는 구로구 치매안심센터가 주최한 제16회 치매 극복의 날 기념행사다. 축제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예스병원 등 치매안심센터 유관기관들이 대거 참여했다. ‘치매 친화적 환경 조성’을 목표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19일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진행됐다.
치매환자와 가족들 적극 참여해
치매친화적 환경은 지역사회 구성원이 치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치매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행사 취지대로 구로구 온보듬 대축제에서는 치매환자들과 일반 지역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어울렸다. 개막과 동시에 축제에 입장했는데, 부스에는 곧바로 노인분들과 부모를 모시고 온 자녀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 진행요원은 “사람들이 너무 몰리니, 사람이 없는 부스부터 먼저 방문해 주세요”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물품 바자회에 참석한 채순희(80)씨와 김재명(83)씨 부부 [사진=요양뉴스]
축제에서는 체성분 측정, 우울증 및 스트레스 검사, 스마트 비대면 건강관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그 중 특히 시선을 끈 부스는 ‘물품 바자회’다. 여기서는 치매환자 가족이 뜬 뜨개 가방, 수세미 등을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다. 물건을 내놓은 채순희(80) 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이 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동안 센터 내 뜨개질동호회에서 틈틈이 만들었다”며 “우리 부부는 오늘 같은 행사가 마련돼 기쁘다. 바깥 활동을 할 수 있어 남편도 좋아한다”고 했다.
이 외에도 치매환자들은 행사의 주체가 되어 치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억다방 진행요원이자 치매환자 김종분(68)씨는 “집에 있으면 건망증이 심했다. 치매 진단을 받고 난 후 치매안심센터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 건강이 좋아졌다. 덕분에 작년 8월부터는 기억다방에서 일하고 있다”고 행복해했다.
치매 인식도 배우고 건강도 지키고, 지나가던 주민도 방문해
이날 축제는 성공적으로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개막 1시간 전부터 행사장 인근을 배회하던 권영자(80)씨는 준비되는 부스들을 보며 빨리 들어가고 싶다는 간절함을 내비쳤다. 권씨는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큰딸이 추천해줘서 방문했다. 병원에 가기는 무섭고 치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예스병원 부스 앞. [사진=요양뉴스]
권 씨는 “이곳이 노인이 많은 동네”라며 “지금 주위에 운동기구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 행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번 행사는 치매에 대한 정보 등 건강관리에 관심이 있는 노인 분들이 주로 방문했다. 실제로 무료 혈압 및 혈당 측정을 제공하는 예스병원 부스가 가장 줄이 길었다.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서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입구에서 정반대에 위치했어도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부스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예컨대 체성분 측정과 맞춤형 건강관리 상담을 제공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부스와 우울증 및 스트레스 검사를 할 수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부스들도 기다리지 않고서 체험하기가 어려웠다. 축제의 인기에 인근 공원을 지나던 시민들도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어르신 한 분은 진행요원으로부터 행사 설명을 듣더니 자전거를 한쪽에 바치고 본격적으로 장내를 구경했다.
구로구 치매안심센터 손은실 총괄팀장은 “유관기관들이 참여해 주셔서 온보듬 대축제를 성공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며 “치매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앞으로 치매가 고혈압, 당뇨처럼 부끄럽지 않고 관리할 수 있는 질병이 되길 바란다. 지역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치매안심센터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전했다.
최연지 기자
2023.09.19
30804
[르포] 온보듬 대축제 다녀와 보니… 다같이 치매 친화적 환경 조성 나서
기억다방 푸드트럭 앞에서 이인영 구로구 국회의원과 경증 치매환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요양뉴스]
“오늘은 출장 왔어요”
19일 서울시 구로구 고척근린공원 광장에서 열리는 '온보듬 대축제’ 가는 길에 만난 이정순(76)씨는 “치매안심센터 내 커피숍에서 일하는데, 오늘은 이곳에서 기억다방을 연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씨는 “이따 같이 일할 동료가 도착한다. 기억다방은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이 운영하는 푸드트럭”이라며 “이번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들었다. 오늘 치매환자들과 가족들, 지역주민들이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 씨의 바람대로 행사는 이른 오전부터 모든 부스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한 부스는 긴 줄이 이어지자 대기자 명단을 적었고, 다른 부스는 줄이 다른 부스를 침범하려 하자 진행요원의 통제대로 줄을 섰다.
온보듬 대축제 입구. [사진=요양뉴스]
올해 1회를 맞은 '온보듬 대축제’는 구로구 치매안심센터가 주최한 제16회 치매 극복의 날 기념행사다. 축제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예스병원 등 치매안심센터 유관기관들이 대거 참여했다. ‘치매 친화적 환경 조성’을 목표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19일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 진행됐다.
치매환자와 가족들 적극 참여해
치매친화적 환경은 지역사회 구성원이 치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치매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행사 취지대로 구로구 온보듬 대축제에서는 치매환자들과 일반 지역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어울렸다. 개막과 동시에 축제에 입장했는데, 부스에는 곧바로 노인분들과 부모를 모시고 온 자녀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 진행요원은 “사람들이 너무 몰리니, 사람이 없는 부스부터 먼저 방문해 주세요”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물품 바자회에 참석한 채순희(80)씨와 김재명(83)씨 부부 [사진=요양뉴스]
축제에서는 체성분 측정, 우울증 및 스트레스 검사, 스마트 비대면 건강관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그 중 특히 시선을 끈 부스는 ‘물품 바자회’다. 여기서는 치매환자 가족이 뜬 뜨개 가방, 수세미 등을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다. 물건을 내놓은 채순희(80) 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이 치매안심센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동안 센터 내 뜨개질동호회에서 틈틈이 만들었다”며 “우리 부부는 오늘 같은 행사가 마련돼 기쁘다. 바깥 활동을 할 수 있어 남편도 좋아한다”고 했다.
이 외에도 치매환자들은 행사의 주체가 되어 치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억다방 진행요원이자 치매환자 김종분(68)씨는 “집에 있으면 건망증이 심했다. 치매 진단을 받고 난 후 치매안심센터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 건강이 좋아졌다. 덕분에 작년 8월부터는 기억다방에서 일하고 있다”고 행복해했다.
치매 인식도 배우고 건강도 지키고, 지나가던 주민도 방문해
이날 축제는 성공적으로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개막 1시간 전부터 행사장 인근을 배회하던 권영자(80)씨는 준비되는 부스들을 보며 빨리 들어가고 싶다는 간절함을 내비쳤다. 권씨는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큰딸이 추천해줘서 방문했다. 병원에 가기는 무섭고 치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예스병원 부스 앞. [사진=요양뉴스]
권 씨는 “이곳이 노인이 많은 동네”라며 “지금 주위에 운동기구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 행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번 행사는 치매에 대한 정보 등 건강관리에 관심이 있는 노인 분들이 주로 방문했다. 실제로 무료 혈압 및 혈당 측정을 제공하는 예스병원 부스가 가장 줄이 길었다.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서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입구에서 정반대에 위치했어도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부스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예컨대 체성분 측정과 맞춤형 건강관리 상담을 제공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부스와 우울증 및 스트레스 검사를 할 수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부스들도 기다리지 않고서 체험하기가 어려웠다. 축제의 인기에 인근 공원을 지나던 시민들도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어르신 한 분은 진행요원으로부터 행사 설명을 듣더니 자전거를 한쪽에 바치고 본격적으로 장내를 구경했다.
구로구 치매안심센터 손은실 총괄팀장은 “유관기관들이 참여해 주셔서 온보듬 대축제를 성공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며 “치매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앞으로 치매가 고혈압, 당뇨처럼 부끄럽지 않고 관리할 수 있는 질병이 되길 바란다. 지역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치매안심센터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전했다.
최연지 기자
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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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북] 가족 요양보호사 워라밸은 마음돌봄 그리고 공동돌봄으로부터
[편집자주: 책이 우리 곁에 오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칩니다. 세상 속에서 보’고’ 느끼’고’ 나서야 쓰입니다. ‘AND북’은 책이 탄생한 사회를 주목하며 읽을거리를 소개하겠습니다.]
베테랑 요양보호사 이은주의 돌봄 에세이 ‘돌봄의 온도’ 표지 [사진=헤르츠나인]
“엄마의 쓰레기통에서 구더기가 나와서 돌아다니는 걸 보면서 이제는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을 했는데도 그것(노인장기요양보험)은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는 ‘돌봄의 책무’를 안고 살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사회제도만 보더라도 노후의 사회적 위험을 모두 공동 부담한다. 가장 가까이에서는 부모가 조부모를, 혹은 자식인 내가 부모를 모시게 되면서 직접적으로 노인 돌봄을 경험한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는 속담처럼 부모와 자식의 역할이 자연스레 교체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젠가 돌봄의 한계에 부딪힌다. 치매와 질병으로 고생하는 노인은 기분이 급변해 감정도 날카롭다.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 집에서 노인을 돌보지만 경제적 한계에도 부딪힌다. 또한 주변인들과 관계도 유지해 가기가 어렵다. 오죽하면 돌봄의 끝은 죽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간병 살인’이라는 비극적인 사회문제다.
가족돌봄은 어때야 할까?
마침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에세이가 출간됐다. 베테랑 요양보호사 이은주가 펴낸 <돌봄의 온도>에 담긴 지은이의 경험담이다. 노화와 치매로 점점 소녀가 되어 가는 엄마를 돌보면서 깨달은 비법인데, 실패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가족돌봄은 자신의 마음을 먼저 돌보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지은이는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란 책이 요양보호사들의 필독서로 꼽힐 만큼, 노인돌봄 전문가다. 그런데도 자신의 엄마를 온 마음으로 돌보는 일은 다른 노인을 돌보는 것과 차원이 다른 힘든 과정이었다고 고백한다. 아이에게 돈이 없어서 이번 달 학원 쉬자고 말 못하는 것과 똑같이 엄마에게는 ‘내뱉기 어려운 말’이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어머니를 24시간 돌보며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전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가 돌봄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돌봄을 위해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가족돌봄이 감정 소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돌봄은 개인의 욕구를 누릴 권리에서 시작하고, 돌봄이라는 영역에 갇혀 희생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치매 등 가족의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질병은 보호자들의 신체·정신적 부담이 크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환자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2017년부터 치매환자와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치매국가책임제도’를 시행했다. 물론 이 제도는 가족들을 위해 힐링 프로그램도 준비됐으며, 돌보는 사람의 마음도 보살핀다.
중요한 또 한 가지, “다 함께”
가족 요양보호사의 휴식은 곧 돌봄공백으로 이어진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 선뜻 쉬지 못하는 이유다. 그래서 베테랑 요양보호사가 꼽은 또 한 가지 비법은 공동돌봄이다. 부모돌봄은 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에게도 돌봄의 책무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부모부양은 형제자매간 많은 갈등을 불러오는 소재다. 재산분배도 부모부양의 기여도에 따라 차등을 두기도 한다.
누구나 당연히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부양가족이 생기고 나서는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한다. 다만 지은이는 다른 형제가 부모를 부양할 때 매달 부모부양비를 공동 부담하고 있으니, 내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돌봄의 부담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므로, 부모를 모시는 형제에게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을 내어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 것이다.
또한 지은이에 따르면 부양자는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을 버리고 도움을 청해야 하고, 다른 가족 구성원은 “내가 아니어도 돼”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엄마의 요구를 일곱 개 중 다섯 개만 들어도 충분하다. 서툰 돌봄이 지속하지 못하는 돌봄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머지는 엄마의 몫, 가족의 몫이다. 이 마음가짐은 좋은 돌봄을 만들어 나가는 필수 과정이다.
가족돌봄은 여전히 가정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공식적으로 집계된 가족인 요양보호사 수만 6만 명이 넘는다. 그들은 단 3시간의 돌봄노동만 인정받고, 일반 요양보호사의 3분의 1 수준의 시급으로 온종일 일한다. 오롯이 가족을 향한 헌신이다. 지치지 않고 이어 나갈 좋은 돌봄을 위해 이은주 요양보호사의 조언대로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보면 어떨까.
최연지 기자
202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