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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장기요양보험 수기공모 체험수기 우수상] 시큰한 마음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 2024.01.0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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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큰한 마음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2022 장기요양보험 수기공모 체험수기 우수상 

 

글:원현지


“○○면사무소지요? 나 ○○마을 이장인데, 여기 할매가 있는데 치매가 심하고, 자식들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지 부모 신경도 안 쓰지, 언제 씻었는가 머리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냄새가 나서 미치겄어요. 마을 사람들은 다 나보고 어떻게 좀 해보라는데 내가 뭐 아는 것도 없고 깝깝해서 미치겄습니다. 혹시 이런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 없습니까?”하고 이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나 좀 도와달라는 비명이 들리는 것만 같았던 어르신과의 첫 만남

면사무소 직원은 어르신의 상태를 들은 후 내가 다니는 센터에 전화했고, ○○면에 이런 어르신이 있는데 등급을 받아서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느냐 물었고, 내가 마을 이장님을 직접 찾아뵙고 설명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마을 이장님께 인사드리고 어르신을 처음 만나 뵈었는데 그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언제 씻었는지 분별이 안 될 정도로 머리카락은 서로 엉켜있었고, 어르신의 몸에 걸쳐있는 옷은 거적때기인지 옷인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어르신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는 코를 찔렀다. 지금도 기억날 만큼 그 행색은 남루하다 못해 나 좀 도와달라는 어르신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르신과 만남을 뒤로 하고 마을 이장님과 대화를 나눴다.

“아까 만났었지만 냄새가, 냄새가, 어우, 저 할매가 마을 회관에 떴다 하면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피해 나갈 정도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여! 그리고 자식들은 몇 명 있다고 하는데 왔다가는 꼴을 못 봤어. 내가!” 하며 혀를 끌끌 차셨다.

쓰레기가 가득한 모습

“마을 사람들도 처음에는 도와줬지! 할매 정신도 온전하지 않고, 자식이라는 놈들이 지 부모 찾지도 않고, 안타까우니까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집도 치워주고 했는데... 며칠만 지나면 도로 온갖 쓰레기란 쓰레기는 다 가져다 집에다 쌓아놓고, 치워준 보람이 없어 보람이! 이제는 우리도 지쳐버려서 그 할매 눈으로 안 보고 사는 게 좋아”라고 말씀하셨다.

이장님께서 말씀해주신 정보를 취합해보면 어르신은 현재 치매를 앓고 있고, 스스로 위생관리 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며 자녀들이 있으나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된 독거노인이었다. 어르신의 상태에 대해 전해 듣고 이장님께서 제일 궁금해하셨던 부분인 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드렸다. 그리고 연락이 끊긴 자녀들을 대신해 마을 이장님께서 어르신의 보호자가 돼 장기요양신청서에 사인해주시면 대신 서류를 제출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시일이 지났고,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들이 방문했다.

 

“어르신~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어르신 걸을 때 보니까 다리가 조금 불편해 보이시는데 혹시 수술하신 적 있으세요?
“혹시 지금 드시고 있는 약은 있으세요?”

 

직원들은 어르신의 현재 상태를 묻고 혹시 앓고 있는 질병은 있으신지, 어르신의 신체부터 인지상태까지 꼼꼼히 살피고 물었다. 상냥하게 대해주는 직원들이 마음에 드셨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대답해주셨다. 내가 봤던 어르신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으나 그 차가웠던 인상은 따뜻한 손길로 눈 녹듯이 녹는 것처럼 보였다.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조금씩 나아지게 된 어르신의 삶

그렇게 공단 직원들이 왔다 가고 어르신의 상태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근거로 의사소견서까지 제출했다. 시간이 흘러 어르신은 장기요양 4등급 판정을 받았고, 방문요양과 방문목욕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어르신을 위해 집 안을 청소하는 모습

요양보호사께서 무던히 애를 쓴 결과, 집 안팎으로 발 디디기도 어려웠던 곳들이 나름 그 모습을 되찾아 갔다. 어르신을 속박하고 있던 것들도 조금씩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에 도움을 주었던 면사무소에서도 어르신의 사정을 알게 돼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에 새 장판을 깔아주고 도배도 해주었다.

또 요양보호사께서 어르신의 치매 속도를 늦추고자 치매 약을 꾸준히 복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고, 부패한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드시던 어르신의 식습관도 조금씩 고쳐졌다. 어르신의 기억은 늘 깜빡깜빡 했지만 어르신께서는 처음 만났던 나를 또렷이 기억하셨다.

“어르신~ 잘 지내셨어요? 저 어르신 만나 뵀던 사회복지사예요!”라고 말씀드리면 “아이고~ 우리 이쁜이 왔네! 어서 와~”하며 반겨주셨다.

요양보호사 및 어르신과 함께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복지사 업무수행일지에 적을 서명이 필요했다.

 

“어르신~ 여기에 어르신 성함 한번 써주시겠어요?”
“어디? 여그?”
“네 어르신, 어르신 성함 옆에 여기에 써주시면 돼요.” 손가락으로 짚어드리며 알려드렸으나 어디에 뭘 써야 하는지 모르셨고, 어르신의 손을 붙잡고 쓰려했으나 저리 치우라며 거부하셨다. 내가 방문했을 때 나를 반기시던 어르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글을 배우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겼던 어르신, 제가 알려드릴게요!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어르신과의 관계가 좀 더 돈독하게 형성됐을 때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내가 어렸을 적에 학교를 그렇게 가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안 보냈지. 그리고 내 밑으로 동생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있으니 학교 문 앞에도 못 가 본 것이 내 평생 한이 돼. 내 이름도 못 쓰니까 추접스러워서 내 이름만이라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나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날짜가 지나 쓰지 못하는 달력을 부욱 찢어 어르신의 이름 세 글자를 크게 적었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본인의 이름을 쓰는 어르신의 모습

“어르신! 제가 어르신 댁에 방문하고 나서 사인을 받아야 해서 그러는데 제가 알려 드릴 테니까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 달에 저 또 오면 그때 어르신 손으로 직접 써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귀찮게 왜 나한테 이런 것을 시키느냐 하며 퉁명스럽게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 뒤에 글자에 대한 감춰진 설레는 표정이 드러났다. 다음 방문에는 기역니은이 쓰여 있는 큰 보드지를 가져가서 벽에 붙여드렸고 짧지만 재미있는 공부를 가르쳐드렸다.

그 결과 김순금(예명), 삐뚤지만 당신의 이름을 직접 쓰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나는 감격스러웠고, 어르신 또한 어린 시절에 겪었던 그간의 설움이 조금씩 지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 알지 못했던 주민들도 어르신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워했고 궁금했던 부분들을 물어보기 위해 나의 방문을 기다리기도 하셨다.

어르신이 방문목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욕조

어르신께서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서주신 이장님께서는 “이번에 아주 큰 것을 배웠어요. 국가에서 이렇게 도와줘서 할머니도 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줘서 참 고맙네요. 앞으로도 어렵게 사시고, 몸 불편한 어르신들 보면 외면하지 않고 내 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어르신은 방문요양과 방문목욕 서비스를 꾸준히 받으면서 어렵지만 치우는 습관을 배우고 계신다. 또한, 주 1회 방문목욕 서비스를 통해 개인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웠던 위생 부분도 유지되고 있다. 더 이상 마을 주민들이 피해 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 속에 스며드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시큰했다.

앞으로도 이 시큰한 마음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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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장기요양보험 수기공모 체험수기 우수상] 시큰한 마음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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