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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인물iN] 보건사회부 김학묵 차관, 교육과 장애인 복지 중계자

  • seraday06***
  • 2024.04.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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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복지인물iN’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에 감사하며 복지와 관련된 인물의 업적, 비하인드 등을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소식으로 매주 찾아오겠습니다. 복지의 여정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보건사회부 3대 차관. [사진=보건복지부]

우리나라 복지행정의 산증인은 김학묵 선생이다. 그는 사회복지 공공행정의 선구자로서 1942년 경기도 사회과 부임을 계기로 경기도 사회과 과장(1946년), 보건사회부 사회국 국장서리(1954년), 서울시 비서관(1958년), 지역사회개발중앙위원회 간사장(1959년), 보건사회부 차관(1960년) 등 복지 분야 요직을 두루 수행했다. 4.19 혁명 등 어수선한 시국에도 세계 각국에서 구호물자를 조달해 배분하는 중책을 맡은 바 있는 인물이다.

이 밖에 그의 공로에는 ‘사회사업 전파 목적의 교육 제공’과 ‘민간 분야 복지 실현’도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복지의 학문화를 주도하고 공직 은퇴 후에는 장애인 복지 실현에 나선 점이 그렇다. 특히 선진국의 사회복지학문과 국내 학계, 뇌성마비 장애인과 민간 지원금 조달 후원자 등 사회복지 중계자로서 나라에 이바지한 그의 복지 업적은 발전된 복지국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사회사업개론 첫 출간 조명…대학생 필독서 집필로 학문화 기여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의 사회복지는 외국의 원조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이 때문에 김학묵 선생에게도 여러 방면에서 활약할 기회가 왔다. 그가 경기도 사회과장 재직 시 UN의 지원을 받은 정부는 한국의 복지 발전을 도울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인재를 선진국으로 파견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제1회 UN 장학생으로 뽑힌 그는 1950년 6개월간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사회보장제도를 고찰하면서 배운 긴급구호사업을 전쟁 피난민 구호에 적용하기도 했다.

또한 김학묵은 보건사회부 사회국 국장서리에 재직하던 중 1955년 하상락, 백근칠과 함께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리고 같은 해 한국 최초의 ‘사회사업개론서’를 출간했다. 세 명의 외국 저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만큼 독자적인 연구서는 아니었지만, 그의 공직 경험을 살려 초창기 복지 분야의 입문서 역할을 했다.

그는 1957년 귀국 이후 서울대학교 사회사업학과 신설에 힘을 보태면서 교육계에서도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복지 강의를 전담하는 교수로서 미네소타 대학원의 교육방식, 커리큘럼 및 교재, 방법 등을 한국의 교육 현장으로 옮겨온 것이다. 사회사업개론서 역시 이때부터 ‘대학생 필독서’로 불리면서 판매량이 증대해 재판을 찍었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회장 역임, 민간 분야서 복지 실현


그는 1980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약 20년간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민간 분야에서 복지를 실현하는데도 주목했다. 한국뇌성마비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재활학교 어머니 모임에서 비롯된 조직이다. 어머니들은 재활학교 프로그램만으로 부족했던 치료와 재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판매 활동 등을 통한 수익금 마련에 힘썼다. 수익금 규모 확대 과정에서 사단법인화를 추진했는데, 이들은 이때 교육과 공직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그를 1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보건사회부 차관 출신으로 신뢰를 담보하는 사회적 명망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는 장애아동을 둔 부모 마음에도 공감을 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셋째 아들이 시각장애인으로서 장애인 복지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에 ‘뇌성마비’라는 단어조차 없을 정도로 장애에 대해 무지하고, 인식이 처참했던 시기에도 그는 장애인 복지에 기꺼이 힘을 보탰다. 특히 장애인에게 맞춤형 복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예가 장애인 재활기기 보급사업이다. 그는 기성 제품을 일괄적으로 배부하지 않고, 신청자의 개별적인 신체 조건과 요구를 수렴해 맞춤형 특수의자와 특수휠체어를 제공했다. 당시 뇌성마비복지회 김학묵 회장은 "앞으로의 뇌성마비인을 비롯한 중증 장애우 복지 문제는 광범위한 케이스워크(사례별 지원서비스)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故 김학묵 선생은 선진국에서 배운 복지사회를 실현하고자 교육자로서 뜻을 펼치고, 미흡한 복지 정책을 느끼고 직접 민간에 나서서 복지를 실현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우리나라 복지에 아낌없이 기여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업적은 사회복지사가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계자 역할임을 잘 보여준다.

 

<저작권자 © 요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fighti*** 2024.05.03 10:17
    일평생을 살면서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은 참 귀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figh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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