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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iN] 90세 김학진 어르신이 요양보호사가 된 까닭은?

  • 2023.06.0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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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요양iN’은 요양 관련 협회, 요양 및 사회복지학계, 헬스케어 기업 및 정치인 등을 만납니다. 시니어의 행복한 노년생활을 위한 방향을 함께 모색해 나가겠습니다.]

올해로 결혼기념일 70주년을 맞은 남편은 아픈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고 홀로 편하게 살기는 싫었다. 노인에게 요양원은 자유가 박탈당한 지 오래전인 감옥이다. 밥도 제때 주고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돌봄도 있지만, 정작 최소한의 ‘처치’로만 삶을 연명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김학진 어르신은 90세의 나이에 아내 이분심을 직접 돌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달 7일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어전리에서 만난 김학진 어르신 [사진=요양뉴스]
김학진 어르신이 처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겠다고 결심한 건 작년 8월, 아내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장기요양 4등급을 받고 나서부터다. “자신만 믿고 21살에 시집와서 고생한 아내 이분심을 남의 손에 맡기자니 영 걱정스러웠다.” 동네의 소문에 의하면 요양원은 ‘생지옥’에 가까웠다. 시키는 대로 통제받는 삶을 아내가 겪게 할 순 없었다. 자연스레 가족요양을 결심하고 등록비 55만 원을 내며 교육원에 손수 찾아갔다.

 

고비 끝에 합격

“말도 못합니다. 처음에는 교통비도 부담되고, 차를 한 번 타는 것도 아니고 고생 꽤 했어요. 집에서 장계 농협까지 택시 왔다가 또 버스 한참 기다리다가 탔는데 또 환승하고. 도착해도 교육시간까지 한참 기다렸어요. 차가 딱딱 시간 맞춰서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오토바이 운전해서 한번 가봤는데. 아 그 시간이 또 출근 시간이야. 엄청나게 밀리죠. 그리고 2차선이라 너무 위험한 거야. 자동차 쌩하고 막 지나가고 하면 나는 고령인데. 힘도 없고 무섭지.”

그에게는 여러 고비가 있었다. 험난한 과정의 첫 시작은 먼 거리였다. 어르신이 거주하는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어전리는 배차간격이 40분에 달할 정도로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계북면에는 가까운 교육원이 없어 장수군 등기소까지 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약 20리 정도 되는 거리를 할아버지는 아침 9시까지 힘겹게 찾아다녔다. 한 20일이 지났을 무렵, 동네 사모님이 같은 학원에 다녀서 첫 번째 고비는 일단락됐다.

얼마 가지 않아 다시 한번 찾아온 고비는 세월이었다. 농사일로 먹고 산지 어언 40년. 그가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은 일도 1945년 국민학교가 마지막이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서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교육원에 도착했으나, 강사의 수업내용은 집에 돌아오면 휘발돼 사라지고 말았다.

“내 나이가 90세(당시)가 다 되잖아요. 도중에 그만두려고 했어요. 강사가 앞에서 수업할 때는 들어오는데, 아 돌아와서 앉기만 하면 바로 다 없어지고 하더라고. 아 이거 도저히 안 되겠다. 포기해야 되겠다. 여러 사람한테 창피스러운 꼴 안 만들고 싶어서 집사람한테 물어보고 그랬어요. 다들 계속 도전하라고 하니까. 용기를 얻어서 계속했지. 아침 일찍부터 시험지 바닥에 망 늘어놓고 공부하고. 저녁에 잠 안 올 때는 이제 시험 유튜브 틀어 놓고.”

하루 8시간씩 꼬박 240시간 교육을 다 듣고 난 뒤, 2022년 11월 5일 대망의 제41회 요양보호사 시험 날이 다가왔다. 김학진 어르신은 시험지를 받고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쉬운 것부터 풀어라”라는 원장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어려운 거를 나중에 풀었는데도 처음에 채점했을 때 합격점수가 미달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채점을 해보니까 85점이었다. 100점 만점 중 60점 이상만 넘기면 되는데,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던 것이다.

 

변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일상

그는 최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다. 김학진 어르신은 추운 겨울날에 먹을 것이 없어 강가의 얼음을 깨서 미꾸라지를 잡아먹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젊었을 적 이분심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해 늘 가졌던 미안한 마음을 보답 중이다. 90분 태그를 찍고선 하루에도 7~8번씩 기저귀를 갈고, 밥도 짓는다. 집안일도 모두 할아버지 몫이다.


방문요양 기록하기 위해 접속해야 하는 스마트 태그 화면 [사진=요양뉴스]
91세인 이분심 할머니는 등급 판정을 받을 당시만 해도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숨을 가쁘게 쉬면서 대상포진 후유증도 있고, 한쪽 어깨와 양쪽 고관절이 인공관절로 걷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학진 요양보호사의 돌봄이 있은 지 6개월이 지난 현재는 호전돼 화장실을 부축해서 가는 일도 가끔 생겨났다.

이런 변화는 노인 돌봄 전문인력인 요양보호사 김학진 어르신의 노력 덕분이다. 옷을 입혀주기 위해 힘에 부치지만 아내를 직접 안아서 들었고, 무슨 일이 생길까 염려돼 멀리 가는 일도 줄었다. 할아버지는 힘닿는 데까지는 직접 아내를 돌볼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 요양원은 마냥 믿음직스럽지만은 않다.

 

돌봄 환경이 변해야…다른 노인들도 좋은 돌봄 받기를  

“가족이니까 화장실도 가고 싶고 뭐 먹고 싶다고도 말할 수 있는 거죠. 갔다 온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요양원은 그런 것들 말도 못하고 어렵게 사시는 분들 많아요. 그리고 노인인구 늘어서 요양이 호황이라 하는데 장수군은 안 그래요. 본인부담금 15% 낼 형편이 안 돼서 요양 서비스 이용 못 하는 노인들 수두룩한데 뭘”

그는 편안한 돌봄을 받으면서 생활할 수 없는 노인들을 걱정했다. 그러면서 방문요양 인정 시간에 대해서 개선의 목소리를 냈다. 보통 노인의 가정에 요양보호사가 하루에 3~4시간을 방문하는데, 이 시간이 너무 짧다고 말한다. 경험해 보니 밥도 세끼 다 챙겨 먹어야 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느라 사실상 제일 중요한 ‘요양보호’에 쏟는 시간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요양보호사를 고르는 일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꼽았다. 현재 매칭 시스템은 기관과 계약을 하면, 기관에 소속된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에게 배정되는 구조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원하는 조건에 맞는 요양보호사를 구하기는 더욱 어렵다고 그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할아버지는 지역사회에 살아가는 노인들이 제대로 돌봄 받는 환경이 구축되기를 소망하면서 자신이 돌봄 받고 싶은 요양보호사는 ‘밥 잘해주고 잘 웃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김학진 할아버지와 이분임 할머니[사진=요양뉴스]

그의 바람은 ‘김학진 요양보호사’였다. 사실 그는 아내가 밥투정을 해도 이해해 주고 배려하고,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간다. 그는 “모든 요양보호사들이 가족을 돌보는 것처럼 아내나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도와줄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돌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요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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