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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인물iN] 앤 설리번, 우리나라에도 ‘헬렌켈러법’ 꼭 필요한 이유 알려줬다

  • seraday06***
  • 20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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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복지인물iN’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지에 감사하며 복지와 관련된 인물의 업적, 비하인드 등을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소식으로 매주 찾아오겠습니다. 복지의 여정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앤 설리번 1881년경. [사진= 미국 시각 장애인 재단(American Foundation for the Blind)]


시청각 장애를 가진 헬렌 켈러가 스승 앤 설리번 메이시(Anne Sullivan Macy, 1866-1936)를 만나 장애를 극복하게 되자, 미국에서는 시청각 장애인 지원 법률안 정식 명칭을 ‘헬렌켈러법’으로 이름 붙였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시각과 청각 기능이 함께 손상된 시청각 장애는 별도의 장애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현재 시청각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자립에 대한 복지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시청각 장애는 촉각으로만 소통할 수 있어 단순히 중복 장애로 치부할 수 없다. 그 촉각 마저도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조차 정의되지 않은 것이 더욱 문제다. 이를 위해 시청각 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진흥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한국판 ‘헬렌켈러법’은 제21대 국회에 상정됐지만 지난달 29일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됐다. 이에 헬렌켈러법 탄생을 이끈 헬렌을 지도한 설리번의 생애가 주목된다.

 

 

퍼킨스 맹인 학교에서 의사소통 능력 함양

어렸을 적 설리번은 눈에 세균이 감염되면서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시각장애인이 된 그녀는 부모님을 모두 여의면서 10살 때 트윅스버리 구호소에 보내졌다. 이곳은 부랑자 수용시설이자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병을 가진 빈곤층을 치료하는 의료시설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시설 내 영유아 사망률이 엄청날 정도로 부패와 학대 등 비리로 얼룩진 곳이었다. 훗날 설리번은 “잔인하고, 우울하고, 소름 끼쳤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1880년 한 교사를 설득한 끝에 ‘퍼킨슨 맹인 학교’로 옮기게 된다. 이후 설리번의 삶은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그동안 간단한 단어 철자 하나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배움으로 여러 단어를 깨우쳤다. 청각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수동 알파벳도 익혔다. 손 기호로 만들어진 수동 알파벳은 청각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런 경험으로 설리번은 ‘교육을 통해 기억력, 이해력, 판단을 사용하고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1886년 6월 1일 퍼킨스 맹인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그녀는 “우리는 생각과 인내를 통해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힘과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고, 참되고 고상한 성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합니다”라고 장애인 교육 증진을 도모했다.

 

설리번 가르침으로 자립적인 삶을 살게 된 헬렌

성공적인 눈 수술로 다행히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녀는 졸업 후 교사로 일하게 된다. 퍼킨슨 맹인 학교 교장으로부터 헬렌 켈러 가정 교사 자리를 제안받았기 때문이다. 설리번의 교육 철학은 ‘좋아하고 궁금한 내용으로 즐겁게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야외수업이었다. 생물과 꽃이나 동물을 접하는 야외수업과 같이 흥미로운 내용일수록 교육의 효율성이 오른다는 게 주요 골자다.


 

앤 설리번의 손을 잡은 채로 앉아 있는 헬렌 켈러. [사진= 미국 시각 장애인 재단(American Foundation for the Blind)]


이 교육철학은 성공적이었다. 헬렌은 심각한 질병을 앓고 생후 19개월부터 앞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시청각장애인이었다. 본래 누군가와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도 없었고, 그저 통제 불능의 거친 여섯 살 아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설리번의 특훈 이후로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해졌다. 그녀는 별장에서 헬렌과 둘이 지내면서 체험을 통해 단어 의미를 전달했다. 헬렌이 단어 ‘물’의 뜻을 알고 싶어하자, 수도꼭지에서 튼 물이 머그잔을 가득 채워 몸에 물이 튀었을 때 헬렌의 손에 "w-a-t-e-r"를 써내려 가며 단어를 이해시켰다. 이 방법으로 헬렌은 3주 동안 100개가 넘는 단어를 습득할 수 있었다.

덕분에 헬렌은 대학교 진학에도 성공했다. 이 역시 설리번이 헬렌에게 하루에 적어도 다섯시간씩 책을 읽어주는 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헬렌은 오늘날 장애인 복지와 여성 참정권 확대를 일궈낸 역사적인 인물 그리고 장애의 어려움을 극복한 장애인의 상징이 됐다. 장애인도 자립할 수 있고, 그 기반엔 교육이 중요함을 증명해낸 것이다.

 

앤 설리번이 헬렌의 눈과 귀가 되어주었던 것과 달리 국내에서 시청각 장애 영역 맞춤형 지원은 전무하다. 청각 장애는 수화, 시각 장애는 점자로 장애인 직업교육을 듣거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 반면 시청각 장애는 오로지 촉각에만 의존하므로 일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하다. 헬렌켈러법은 촉수어 통역 전문가가 양성되고, 청각 장애인이 촉수어를 배우면서 장애 극복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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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jm*** 2024-06-04
    헬렌켈러의 선생님으로만 알았지. 그분도 이렇게 힘든 과정을 이겨내신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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