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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요양의 종말④] “김장해주고 제사 음식까지?”... 가사도우미로 전락한 보호사들

  • 가순필 기자
  • 2026-01-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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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뉴스=가순필 기자] “어르신 신체 수발하러 갔는데, 보호자가 대뜸 배추 50포기를 쌓아놓고 김장을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거절했더니 ‘돈 받고 오면서 왜 유세를 떠느냐’는 핀잔이 돌아왔습니다.” 방문요양보호사 A씨(61)는 그때의 모멸감을 잊지 못한다. 2026년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현장의 방문요양보호사들은 여전히 전문가가 아닌 ‘집안일 해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의 벽에 갇혀 있다.

보호사의 업무범위는 명확하지만, 이 업무범위를 지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사진=요양뉴스]
보호사의 업무범위는 명확하지만, 이 업무범위를 지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사진=요양뉴스]

‘돌봄’은 사라지고 ‘파출부’만 남은 현장

방문요양 서비스의 핵심은 어르신의 신체 활동 지원과 인지 자극 등 ‘전문적 돌봄’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보호자의 식사 준비, 온 가족의 빨래, 베란다 물청소, 심지어 제사 음식 장만 같은 부당한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지침상 요양보호사는 수급자 본인 외의 가족을 위한 가사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폐쇄적인 가정 내에서 1:1로 근무하는 특성상, 이러한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사람을 바꿔달라”거나 “불친절하다”는 민원으로 이어져 결국 앞서 언급한 ‘고용 불안(1부)’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시설장들의 입장에서도 대상자의 컴플레인은 골치 아픈 업무 내용이기에 늘상 "왠만하면 해주세요."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일쑤다.

전문가라는 자긍심 갉아먹는 ‘업무 범위의 부재’

이러한 인식의 저변에는 ‘요양보호사는 곧 가사 도우미’라는 그릇된 사회적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자격증을 취득하고 보수 교육을 이수하는 전문 인력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아줌마’, ‘도우미’로 불리며 전문성을 부정당한다.

요양보호사 B씨는 “치매 어르신의 이상 행동을 조절하고 낙상을 방지하는 전문적인 케어를 하고 싶어도, 보호자들은 화장실 청소 상태부터 점검한다”며 “내가 배운 기술이 쓰레기 분리수거와 걸레질뿐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어 일을 그만두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서비스 범위 가이드라인 위반 시 ‘강력한 제재’ 필요

방문요양보호사의 전문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용자와 보호자의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표준 서비스 제공 계약서’에 금지 업무(가족 가사 지원 등)를 더 명확하고 굵게 명시해야 하며 대상자와의 첫 계약 시 이 부분을 명확히 공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부당한 가사 업무를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수급자 가정에 대해서는 ‘서비스 중단’이나 ‘자부담 상향’ 등 실효성 있는 제재 조치가 있어야 보호사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다. 

국내 돌봄인력 육성 플랫폼인 케어런츠의 박지성 대표는 "'요양보호사는 가사도우미가 아닙니다'와 같은 캠페인을 장기요양보험공단이나 보건복지부가 홍보 예산을 집행해서라도 전개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향후 3년 간 25만명이나 부족해질 보호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급여와 같은 경제적 여건 개선도 필요하지만 인식의 개선도 적극적으로 임해야"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전문가가 전문가답게 일할 수 없는 환경에서 질 높은 돌봄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026년, 이제는 ‘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부당한 노동 착취를 멈추고, 방문요양보호사의 전문적 영역을 명확히 확보해 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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