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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호텔, 속은 여전히 병원... 한국에 없는 ‘진짜’ 돌봄 철학

  • 김혜진 기자
  • 2026-01-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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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뉴스=김혜진 기자] 최근 국내 실버 산업 시장에 ‘프리미엄’ 바람이 불고 있다. 화려한 외관과 호텔급 식단을 내세운 시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정작 그 속을 채워야 할 돌봄 철학은 빈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르신의 존엄과 자립을 강조하는 살루토제네시스(Salutogenesis)와 같은 철학은 한국에서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이를 뒷받침할 공간 설계도, 철학을 현장에서 구현할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공간에 맞추는 한국, 환경이 어르신에게 적응하는 유럽

복지 선진국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요양 시설을 병원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정의하고 인력과 공간을 혁신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의 실비아헴멧  (Silviahemmet)재단이다.

실비아 왕비가 설립한 이 모델은 "치매 어르신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어르신에게 적응해야 한다"는 철학을 고수한다. 이곳의 요양보호사들은 단순한 수발자가 아니다. 이들은 고도의 ‘치매 전문 철학’을 이수한 전문가로서, 어르신의 상실된 기능을 대신하기보다 남아있는 기능을 최대한 활용해 스스로 삶을 꾸리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을 수행한다.

실비아헴멧 재단이 만든 치매 어르신 전용의 주거시설 실비아보(Silvia Bo)의 내부 이미지 (사진=Dezeen 제공)
실비아헴멧 재단이 만든 치매 어르신 전용의 주거시설 실비아보(Silvia Bo)의 내부 이미지 (사진=Dezeen 제공)

공간의 혁신이 삶의 질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네덜란드의 호그베이(Hogeweyk) 마을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명 ‘치매 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슈퍼마켓, 카페, 광장 등이 실제 마을처럼 조성되어 있다. 어르신들은 쇠창살이 있는 병동에 갇히는 대신, 안전하게 설계된 마을 안에서 자유롭게 산책하고 쇼핑을 즐긴다. 치매라는 질병에 갇히지 않고 평범한 일상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어르신이 평생 살아온 삶의 양식을 그대로 존중하는 철저한 ‘인간 중심 설계’가 자리 잡고 있다.

실비아보 등 해외 선진 노인주거복지 시설은 '화려함'보다는 사용자의 관점에서 정말 필요한 '실용적' 돌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진=Dezeen)
실비아보 등 해외 선진 노인주거복지 시설은 '화려함'보다는 사용자의 관점에서 정말 필요한 '실용적' 돌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진=Dezeen)

인력 운영 측면에서도 네덜란드의 뷔르트조르그(Buurtzorg)는 파괴적인 혁신을 보여준다. 이들은 거대한 관리 시스템 대신 간호사와 요양보호사가 소규모 자치 팀을 이뤄 어르신의 가정을 직접 방문한다. 단순히 약을 전달하거나 신체를 수발하는 단편적 서비스를 넘어, 어르신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조직가’로서 활동하며 돌봄의 경계를 가정 밖으로 확장한다.

한국의 현실: 철학 없는 공간, 교육 없는 인력

반면 한국의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대형화된 요양시설들은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어르신들의 행동 동선을 제약한다. 살루토제네시스에서 강조하는 ‘어르신 스스로 삶을 통제하는 감각’은 한국식 ‘안전 중심 관리’ 문화 앞에서는 사치에 가깝다.

더 심각한 것은 인력이다. 해외의 선진 사례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철저한 철학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요양보호사 양성 과정은 단기 자격 취득에 급급해, 실비아헴멧의 치매 케어나 뷔르트조르그의 자치 모델 같은 전문 역량을 키워주지 못한다. 결국 하드웨어(시설)가 아무리 화려해져도, 그 속에서 어르신의 존엄을 읽어낼 소프트웨어(사람)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사람’에 투자하지 않는 시설 혁신은 허구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미래 돌봄 모델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해외 시설의 겉모습을 베끼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경고한다.

한 요양 전문가는 “스웨덴과 네덜란드의 사례가 선진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곳에 화려한 건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르신 한 명 한 명의 삶의 궤적을 존중하는 ‘돌봄 인력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선진 돌봄 철학을 이수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이 현장에서 창의적인 케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수가 체계와 가이드라인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26년, 대한민국 돌봄의 시계는 여전히 ‘관리’라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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