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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시설 탐방기]④ 벽을 허문 치매마을 네덜란드 ‘호그웨이’

  • 가순필 기자
  • 2026-04-1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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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뉴스=가순필 기자]  “이곳에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도, 창살이 처진 병동도 없습니다. 어르신들은 그저 평생 해오던 대로 장을 보고,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이웃과 수다를 떨 뿐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근의 작은 마을 ‘호그웨이(Hogeweyk)’는 전 세계 요양 산업 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곳이다. 세계 최초의 치매 안심 마을인 이곳은 치매 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할 ‘환자’가 아닌, 존엄성을 가진 ‘주민’으로 대우하며 치매 케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덜란드 호그웨이 치매 마을에는 울타리가 없다. 치매 어르신들을 위한 개방 공간이 두드러진다. (사진=구글 어스)
네덜란드 호그웨이 치매 마을에는 울타리가 없다. 치매 어르신들을 위한 개방 공간이 두드러진다. (사진=구글 어스)

격리된 병동 대신 익숙한 ‘일상’을 선물하다

호그웨이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을 전체가 거대한 요양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외형상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을 안에는 슈퍼마켓, 영화관, 우체국, 카페,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150여 명의 중증 치매 노인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산책하고 쇼핑을 즐긴다.

전통적인 요양원이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약을 먹는 ‘통제’ 중심의 공간이라면, 호그웨이는 환자의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다. 입소 시 환자가 평생 살아온 방식에 따라 도시형, 귀족형, 문화형 등 7가지 테마의 가구에 배치된다. 익숙한 인테리어와 가구, 생활 양식은 치매 환자의 불안감을 낮추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핵심 요소다.

의사 대신 ‘이웃’이 상주하는 돌봄 시스템

이곳의 돌복 인력은 가운 대신 평상복을 입는다. 간호사와 간병인은 마트 점원이나 카페 직원, 혹은 친절한 이웃의 모습으로 마을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들은 어르신이 계산대에서 실수하거나 길을 헤맬 때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며 일상을 지원한다.

이러한 ‘생활 밀착형 케어’의 결과는 놀랍다. 호그웨이 거주 노인들은 일반 요양 시설 거주자보다 식사량이 늘고 운동 능력이 향상되었으며, 무엇보다 공격적인 성향이 줄어들어 항정신성 약물 투여량이 현저히 낮아졌다. ‘치매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적응의 대상’이라는 호그웨이의 철학이 지표로 증명된 셈이다.

치매 어르신들을 이웃들과 공간을 공유하며 자연스러운 케어를 받고 있다. (사진=The Lovepost)
치매 어르신들을 이웃들과 공간을 공유하며 자연스러운 케어를 받고 있다. (사진=The Lovepost)

한국형 호그웨이 우리에게 필요한 과제들

국내에서도 호그웨이 모델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실정에 맞는 ‘한국형 치매 마을’과 ‘프리미엄 케어 모델’ 구축을 위해 전문가들은 단순한 공간 구성을 넘어선 두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는 돌봄 인력의 전문화와 역할의 재정의다. 호그웨이의 직원들이 마을 주민으로서 기능하듯, 국내 요양보호사들 역시 단순 수발을 넘어 어르신의 일상을 설계하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둘째는 금융과 케어의 결합이다. 호그웨이와 같은 고품질 서비스를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SMS나 주요 금융 그룹들이 시도하는 것처럼, 안정적인 운영 자금 확보와 서비스 고도화를 위한 ‘케어-파이낸스’ 모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돌봄의 미래, ‘격리’에서 ‘통합’으로

호그웨이의 설립자 이본 반 아메롱겐은 “치매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역시 초고령 사회를 목전에 둔 지금, 어르신들을 도시 외곽의 폐쇄된 공간으로 보내는 대신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의 혁신’이 필요하다. 호그웨이가 보여준 ‘일상의 힘’은 이제 한국 요양 산업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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