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뉴스=박지성 기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30일부터 장기요양 수급자의 병원 이용을 돕는 ‘장기요양 병원동행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번 사업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병원 이동부터 접수, 진료, 검사 대기, 처방약 수령, 귀가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장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병원동행은 주로 가족의 몫이었다. 어르신이 정기 외래진료를 받거나 검사를 받아야 할 때 보호자는 반차나 연차를 내고 동행해야 했다. 자녀가 멀리 살거나 맞벌이인 경우에는 병원 일정을 미루거나 별도의 동행 인력을 구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이번 시범사업은 이 같은 가족 부담을 장기요양보험 체계 안에서 일부 나누겠다는 시도다. 장기요양서비스가 집 안 돌봄을 넘어 의료 이용 과정까지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기요양보험의 역할이 병원 이용 과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 = AI 기반 요양뉴스 재구성)282개 기관 참여…1인당 연 50만 원 한도
이번 시범사업에는 통합재가기관 170개소와 통합재가기관과 협약을 맺은 노인요양시설 112개소 등 총 282개 기관이 참여한다.
서비스 대상은 통합재가기관을 이용하는 장기요양 1~5등급 수급자와, 통합재가기관과 협약을 맺은 노인요양시설 이용자 중 장기요양 1~5등급 수급자다.
이용자는 2026년 기준 1인당 연간 50만 원 한도 안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비용은 기존 장기요양급여와 마찬가지로 본인부담률에 따라 부담한다.
서비스 제공 인력은 통합재가기관 소속 방문요양보호사 또는 협약 노인요양시설 소속 간호사·간호조무사다. 다만 시설 소속 간호사·간호조무사는 법정 배치기준보다 추가로 배치돼 인력추가배치 가산을 받고 있는 인력으로 한정된다.
단순 이동 아닌 병원 이용 전 과정 지원
병원동행 서비스는 단순히 차량을 타고 병원에 함께 가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출발지에서 병원까지 이동을 돕고, 병원 도착 후 접수와 수납, 진료실 이동, 검사와 진료 대기, 처방약 수령, 귀가까지 병원 이용 과정을 연속적으로 지원한다.
고령자에게 병원은 익숙하지만 어려운 공간이다. 접수 순서를 기다리고, 진료과를 찾아가고, 검사실로 이동하고, 수납과 처방전 발급을 처리하는 과정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치매나 인지기능 저하가 있는 경우에는 의료진의 설명을 이해하고 보호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병원동행은 단순한 이동 지원이 아니라 의료 접근성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장기요양보험의 영역 확장
이번 시범사업은 장기요양보험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 장기요양서비스는 주로 집 안이나 시설 안에서 이뤄지는 돌봄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실제 어르신의 생활에는 정기 진료, 검사, 약 처방, 재활치료 등 의료기관 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만성질환을 가진 어르신은 병원 이용이 반복된다. 병원에 제때 가지 못하면 상태가 악화되고, 이는 다시 입원이나 돌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병원동행은 이런 악순환을 줄이는 예방적 서비스가 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병원동행이 장기요양보험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돌봄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동 지원, 병원 내 동행, 진료 대기, 처방약 수령은 기존 방문요양 업무와 맞닿아 있지만, 의료기관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다 명확한 운영 기준이 필요하다.
제도의 취지는 좋으나, 현실적인 과제들 역시 산적해 있다. (사진 = AI 기반 요양뉴스 재구성)업무 부담과 책임 기준도 과제
시범사업이 현장에 안착하려면 몇 가지 과제가 남는다. 우선 요양보호사의 업무 부담 문제다. 병원동행은 이동 시간과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병원 상황에 따라 진료가 지연되거나 검사 일정이 추가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서비스 제공 시간 산정, 이동 중 사고 책임, 병원 내 돌발상황 대응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병원동행이 가족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인 동시에 현장 종사자에게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정보 전달 범위도 쟁점이다. 동행 인력이 진료실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료진 설명을 어디까지 보호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 개인정보와 의료정보 보호는 어떻게 관리할지도 정리돼야 한다. 동행 인력이 가족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용 한도 역시 현실적인 쟁점이다. 1인당 연간 50만 원 한도는 병원 이용 빈도가 높은 어르신에게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만성질환이 있거나 여러 진료과를 다니는 수급자의 경우 병원동행 수요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가족 부담 완화와 현장 체계 정비가 함께 가야
병원동행 시범사업은 고령사회에서 필요한 방향의 정책이다. 가족 돌봄 부담을 줄이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며, 장기요양서비스가 실제 생활의 어려움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제도의 취지가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려면 동행 인력 교육, 사고 발생 시 책임 기준, 의료정보 전달 범위, 병원 내 대기시간 처리, 보호자와의 소통 방식 등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장기요양 병원동행은 “병원에 함께 가주는 서비스”를 넘어선다. 고령자가 지역사회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의료 이용을 누가,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가족에게만 맡겨졌던 병원동행 부담을 공적 장기요양 체계가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번 시범사업은 향후 장기요양서비스의 범위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요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