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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은 결국 성의입니다”…시어머니를 모시던 정성으로 이어온 18년의 돌봄

  • 전형수 기자
  • 2026-09-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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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뉴스=전형수 기자]

2008년 문을 연 하나노인복지센터는 오랜 시간 서초지역 어르신들의 곁을 지켜온 재가복지기관이다. 최근에는 통합돌봄 협력기관으로 선정돼 센터 안에서의 돌봄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주민을 찾아 장기요양, 돌봄지원 등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통합돌봄은 노쇠나 장애,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주민이 자신이 살아온 곳에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필요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센터 업무만으로도 바쁜 남 센터장에게 새로운 역할을 맡는 일은 처음부터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구청에서는 남 센터장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줬고, 결국 그는 이 일을 받아들였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 함께할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사회복지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센터 업무에 함께하며 현장의 경험이 수업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센터를 방문해 실제 돌봄 현장을 배우고 있다.

따뜻한 마음으로 어르신을 돌보는 하나노인복지센터 남기화 센터장.(사진=요양뉴스)
따뜻한 마음으로 어르신을 돌보는 하나노인복지센터 남기화 센터장.(사진=요양뉴스)

 

시어머니를 모신 시간이 돌봄의 시작이 되다

남 센터장이 돌봄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시어머니와의 시간이 자리하고 있다.

형제들이 돌아가며 시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는데, 유독 남 센터장의 집에 오시면 시어머니는 오래 머물고 싶어 하셨다. 당시에도 일을 하고 있었던 남 센터장은 자신이 특별히 잘해드린 것은 없었다고 회상한다.

시어머니가 좋아하던 순대 를 한 봉지 사 들고 집에 들어가면 “돈 아껴라”라고 하면서도 맛있게 드셨다. 고맙다는 말을 따로 하신 적은 없었지만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드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 자꾸 사드리게 됐다.

그러다 시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요양병원과 양로원 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 분야를 접했다. 이후 사회복지사 공부도 시작하게 됐다.

시어머니를 떠나보낸 날, 조문을 온 시어머니의 친구가 남 센터장에게 물었다.

“자네가 막내인가?”

시어머니가 평소 친구들에게 남 센터장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다는 말을 전해주면서 친구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고맙다는 말을 못했네….”

시어머니가 끝내 직접 하지 못했던 말을 대신 전해 들은 순간이었다. 당시를 이야기하던 남 센터장은 지금도 시어머니가 그립다며 눈물을 닦았다.

직접 어른을 모셔본 경험이 있었기에 남 센터장은 돌봄이 가족에게 얼마나 절실하고 중요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경험이 결국 2008년 하나노인복지센터를 시작하는 힘이 됐다.

포기하지 않았던 3개월, 가장 기억에 남은 어르신

센터를 운영하며 수많은 어르신을 만났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한 요양보호사가 처음 방문한 어르신 댁에서 서비스를 제공한 뒤 “몸이 자꾸 가렵다”고 했다. 확인 결과 옴이었다. 옴 증상으로 피부의 가려움이 심해 손톱으로 하도 굵어서 어르신의 상태는 차마 말을 잇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르신은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누군가는 도와드려야 하잖아요.”

남 센터장은 청소업체와 방역업체를 불러 집안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소독했다. 어르신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변경하여 꾸준하게 치료를 했다.. 그렇게 약 3개월이 지나자 어르신의 피부는 눈에 띄게 회복됐다.

어르신과 보호자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 센터장 역시 큰 보람을 느꼈다.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 있었던 일이에요.”

아픈 경험도 직원들과 나누는 살아 있는 교육이 된다

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름철 어느 날, 요양보호사가 옻닭을 먹은 뒤 어르신의 방문목욕을 도왔다가 어르신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일이 있었다. 이후 남 센터장은 어르신을 병원으로 모시고 다녀야 했다.

반지하에 거주하던 어르신을 119불러 병원에 까지 모시는 어려움보다 힘든 것은 보호자의 폭언이었다. 남 센터장뿐 아니라 정성을 다해 목욕을 도왔던 요양보호사까지 함께 폭언을 들어야 했다.

“저도 힘들었지만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을 깨끗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목욕을 시켜드린 건데 그런 말을 들으니 많이 힘들어했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제 마음도 아팠죠.”

남 센터장은 이 경험을 그냥 지나간 사건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날씨가 더워지는 시기가 되면 직원회의와 교육 때마다 당시 이야기를 전한다. 아무리 좋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라도 어르신의 건강 상태와 요양보호사의 컨디션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을 함께 되새기기 위해서다.

현장에서 겪은 경험 하나하나가 직원들과 함께 나누는 살아 있는 교육이 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알아주는 것이 진짜 맞춤 돌봄

남 센터장은 좋은 돌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어르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어르신이라면 요리에 관심이 많고 음식을 잘하는 요양보호사를 연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어르신이라면 말벗에 능한 요양보호사를 매칭하는 방식이다.

이는 요양보호사에게도 마찬가지다.

말재주는 조금 부족해도 요리를 좋아하는 요양보호사라면 음식을 즐기는 어르신을 만나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반대로 이야기를 잘하고 밝은 성격의 요양보호사는 대화와 정서적인 교류를 원하는 어르신과 잘 맞을 수 있다.

단순히 시간과 지역만 맞춰 요양보호사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의 성향과 필요, 요양보호사의 장점을 함께 살펴야 오래가는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남 센터장의 생각이다.

개원 18주년을 맞은 하나노인복지센터의 전경.(사진=요양뉴스)
개원 18주년을 맞은 하나노인복지센터의 전경.(사진=요양뉴스)

 

“돌봄은 성의”…면접부터 장기근속까지 이어지는 마음

남 센터장이 생각하는 돌봄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성의’다.

요양보호사가 면접에 임하는 태도와 마음가짐부터 이미 돌봄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약속 시간을 지키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자세, 어르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결국 현장에서의 돌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 센터장이 말하는 성의는 요양보호사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다.

센터 역시 요양보호사가 오래 근무할 수 있도록 성의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양보호사의 이야기를 듣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함께 해결하며 서로 믿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센터의 역할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하나노인복지센터에는 오랫동안 함께한 요양보호사가 많다. 장기근속자가 많다는 사실은 남 센터장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터뷰가 끝날 센터를 찾은 한 손님이 있었다. 남 센터장은 손님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듣고 필요한 부분을 살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남 센터장이 인터뷰 내내 이야기했던 ‘성의’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시어머니를 모시며 배운 마음에서 시작해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를 함께 살피고, 이제는 통합돌봄을 통해 지역 주민에게까지 돌봄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하나노인복지센터.

18년 동안 이어져 온 돌봄의 중심에는 거창한 방법보다 사람을 대하는 한결같은 마음이 있었다.

남 센터장이 말하는 돌봄은 결국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한 번 더 살피고, 할 수 있는 일을 정성껏 해주는 ‘성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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