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뉴스=가순필 기자] 정부가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한 돌봄서비스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가운데 실효성에 대한 현장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 1일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에는 재가·시설 돌봄현장에 로봇을 배치하고 가정용 돌봄로봇 상용화를 지원하는 ‘피지컬 AI 도입·실증’ 사업에 377억 원이 반영됐다. 돌봄기술 연구개발에도 별도로 145억 원을 신규 투자한다.
정부는 내년 국공립 스마트 돌봄시설 15곳과 지역사회 돌봄로봇 서비스 거점 12곳을 구축하는 등 현장 실증을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현재 예산은 정부안으로 향후 국회 심의 과정에서 규모가 조정될 수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AI 돌봄기술 전주기 지원 전략’이 기술개발 중심의 계획이었다면, 내년부터는 실제 돌봄현장에서 기술의 효과와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 자료와 해외 사례를 함께 보면 기술개발과 실제 현장 확산 사이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AI 돌봄은 흔히 떠올리는 사람 형태의 로봇보다는 광범위하다. (그림=AI기반 요양뉴스 재구성)정부가 말하는 ‘돌봄로봇’, 이것도 로봇?
정부가 추진하는 AI 돌봄은 흔히 떠올리는 사람 형태의 로봇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재가돌봄에서는 화재·가스·움직임을 감지하는 IoT 센서를 비롯해 AI 스피커, 반려로봇, 스마트 밴드, 비접촉 바이탈 측정기 등을 활용한다. 이들 장비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안전·건강·정서 상태를 확인하고, 방문 돌봄이 이뤄지지 않는 시간에도 고령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피는 ‘스마트 홈’이 기본 모델이다.
요양시설에서는 스마트 매트리스나 기저귀 등을 활용해 야간 상태를 확인하고, 구술 내용을 AI가 돌봄기록으로 작성하거나 물품·행정업무를 지원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실제 장기요양시설을 ‘리빙랩’으로 지정해 이용자와 종사자가 직접 기술 실증에 참여하도록 하고, 성과가 확인된 기술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가능한 AI와 ‘사람을 옮기는 로봇’은 다른 단계
중요한 점은 정부 역시 모든 돌봄기술을 단기간에 상용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정부 전략에서는 AI·IoT를 활용한 위험 감지, 건강상태 예측, 정서 지원, 돌봄기록 작성 등은 비교적 단기간에 현장 적용이 가능한 기술로 분류했다.
재가돌봄에서는 낙상 등 응급상황 감지와 건강상태 조기예측, 정서 상태 분석 등이 주요 개발 대상이다. 시설에서는 종사자의 신체부담 경감과 기록 등 업무시간 단축, 식사·영양 등 이용자의 생활관리 지원이 포함됐다.
반면 고령자를 직접 들어 옮기거나 자세를 바꾸고 이동을 지원하는 기술은 상황이 다르다.
정부는 이승·체위변경·이동보조 등을 수행하는 피지컬 AI와 로보틱스를 5년 이상 개발이 필요한 고난도 기술로 구분하고 있다. 야간순찰이나 물품정리 등 일부 반복업무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기술도 중장기 연구 대상으로 제시했다.
정부가 말하는 ‘AI 돌봄’이나 ‘돌봄로봇’ 안에서도 현재 활용 가능한 센서·소프트웨어와 향후 개발이 필요한 물리적 돌봄로봇은 기술 성숙도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돌봄기술 먼저 시작한 일본도 도입률 22%에 불과
해외 사례에서도 기술개발이 곧바로 현장 보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9월 8일 발표된 일본 후지타의과대학 연구진의 조사에서는 아이치현 장기요양시설의 돌봄기술 도입률이 22.0%에 그쳤다. 연구진은 아이치현 내 장기요양시설 2,514곳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으며, 최종 477곳의 응답을 분석했다.
아직 기술을 도입하지 않은 시설 가운데 63.2%는 향후 도입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기술을 도입하려는 이유로 종사자의 업무부담 감소를 꼽은 비율은 95.7%에 달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장관이 개호·복지 로봇 실증시설을 방문해 자동운전 휠체어를 직접 타보는 모습 (사진=일본 후생노동성)그러나 실제 도입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는 재정적 부담 91.1%가 꼽혔다. 이어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우려 62.1%, 관련 정보 부족 55.7% 순이었다. 이미 기술을 도입한 시설에서도 제품 정보 부족과 보조금 신청 절차가 부담으로 지적됐다.
이번 연구는 일본 전체가 아닌 아이치현을 대상으로 했고 응답률도 약 20%라는 한계가 있다. 다만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 개호로봇과 돌봄기술 지원정책을 추진해왔다는 점에서 실제 시설 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제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국내 시설들 "지급도 마진 낮은데 여기서 어떻게 더..."
국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 4월 전략자료에서 돌봄시설들이 기술 도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장비를 구매할 여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돌봄서비스 예산 대부분이 종사자 인건비를 중심으로 구성돼 별도의 기술 투자 여력이 제한적이고, 돌봄기술 공급기업 역시 영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고령친화용품 제조업체의 약 93.4%는 매출 10억 원 미만이다.
또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정부가 돌봄로봇 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약 530억 원이지만, 이 가운데 90% 이상이 기술개발에 집중됐다. 실제 돌봄시설에서 제품을 사용하고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실증환경은 부족했다는 것이 정부의 자체 진단이다.
결국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요양시설이 실제로 구매해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장기요양보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관건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개발 이후의 시장 형성을 함께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연구개발된 기술을 실제 돌봄현장에서 실증하고 사업화와 창업으로 연결하는 한편, 우수한 신기술이 장기요양보험 체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복지용구 품목 확대와 신속등재(Fast Track)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장기요양 현장의 특성과 관련이 깊다. 요양시설이나 재가기관이 자체 비용으로 고가의 장비를 지속적으로 구매하기 어렵다면,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시장 규모를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장기요양보험 수가나 복지용구 제도 등 기존 공적 돌봄체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가 실제 보급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신기술을 보험체계 안에 포함하기 위해서는 비용 대비 효과와 안전성, 실제 업무 감소 효과 등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다.
종사자가 사용할 수 있어야 기술도 작동한다
장비 자체뿐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도 있다. 정부는 현재 돌봄현장에서 근무하는 50~60대 종사자들의 디지털 활용 역량이 기술 확산 과정의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돌봄종사자를 대상으로 AI·디지털 기술 활용교육을 실시하고, 현장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필요할 경우 ‘AI 돌봄 매니저’나 ‘스마트 복지용구 상담원’ 같은 별도의 전문인력 체계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요양시설에서는 여러 종류의 장비가 동시에 들어올 경우 각각의 알림을 확인하고 데이터를 해석하는 새로운 업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기술 도입이 실제 업무부담 감소로 이어지는지, 기존 업무에 새로운 관리업무만 추가하는 것은 아닌지도 실증 과정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2027년, ‘몇 대 보급했나’보다 실질 효과 검증이 중요
정부의 돌봄로봇 정책은 2027년부터 중요한 시험대에 들어간다.
국공립 스마트 돌봄시설과 지역사회 거점이 구축되고 실제 장기요양 현장에서 다양한 AI·로봇 기술의 실증이 진행되면, 지금까지 부족했던 현장 데이터도 본격적으로 축적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단순 도입 대수 보다는 기술 도입 이후 요양보호사의 신체부담과 업무시간이 실제로 얼마나 줄었는지, 낙상 등 안전사고 예방에 효과가 있었는지, 서비스 이용자의 만족도와 돌봄 품질이 개선됐는지, 시설이 정부 지원 없이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비용 수준인지 등 핵심 지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단기간 활용 가능한 AI·IoT 기반 모니터링 기술과 장기간 개발이 필요한 피지컬 AI·로봇을 구분해 성과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돌봄로봇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한 만큼, 앞으로의 과제는 기술을 얼마나 많이 개발하고 보급했는지가 아니라 실제 돌봄현장에서 사람의 부담을 얼마나 줄이고 어르신의 안전과 돌봄 품질을 얼마나 개선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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