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뉴스=전형수 기자] “고독사와 독박돌봄, 간병파산, 영케어러, 노노돌봄, 돌봄노동자의 이탈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모두 하나의 돌봄 문제다.”
국제돌봄의날을 맞아 돌봄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당사자들이 돌봄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현재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과 노인장기요양공공성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9일 청와대 앞에서 ‘돌봄공백 위기와 돌봄파산의 시대에 돌봄의 공공성과 가치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방문요양보호사, 가족돌봄청년, 여성노동단체, 가족돌봄자,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돌봄을 단순한 서비스 공급이나 재정 부담의 문제로 보지 말고, 교육처럼 사회가 지속적으로 책임져야 할 기본 기능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과 노인장기요양공공성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보건복지자원연구원 제공)“3시간 안에 다 하라는 방문요양, 결국 누구에게 부담 가나”
정찬미 전국요양보호사협회장은 방문요양 현장에서 3시간 단위로 짜인 일정 안에 식사 준비와 위생관리, 청소, 건강 확인까지 모두 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정 회장은 “시간이 부족하면 어르신이 넘어질 위험도, 요양보호사가 허리와 어깨를 다칠 위험도 커진다”고 말했다. 수급자의 집이 곧 요양보호사의 일터인 만큼 부당한 집안일 요구나 폭언·폭행, 성희롱을 혼자 감당하는 문제도 함께 제기했다.
그는 방문요양 서비스 시간 현실화와 고충처리·중재 전담체계 마련, 돌봄정책 결정 과정에 요양보호사 참여, 적정 임금과 안정적인 고용 보장을 요구했다.
가족돌봄청년의 부담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우새롬 N인분 활동가는 보건복지부 2022년 조사를 인용해 13~34세 가족돌봄청년이 주 평균 21.6시간, 약 3년 10개월 동안 가족을 돌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이 돌봄을 맡을지, 얼마나 맡을지 선택할 수 있으려면 가족 밖에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공적 돌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에게 집중된 돌봄 부담도 지적됐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치매노인을 주로 돌보는 가족의 82.4%가 여성이고, 노인 돌봄 제공자로 가족원을 꼽은 비율도 81.4%에 달한다고 밝혔다. 유급 돌봄노동자 역시 80%가 여성인 만큼 가족돌봄과 저임금 돌봄노동의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건전한 돌봄 생태계 구축을 위한 한일 세미나도 열렸다. (사진=보건복지자원연구원 제공)일본도 “보험은 있는데 돌봄기관이 없다”
해외 사례도 소개됐다. 일본 ‘케어사회를 만드는 모임’의 우에모토 마사코 씨는 일본에서 방문개호 사업소가 하나도 없는 지방자치단체가 116곳, 단 한 곳만 남은 지역이 279곳에 이른다며 돌봄을 시장에만 맡겼을 때 나타나는 공급 공백을 경고했다.
참가자들은 돌봄의 위험과 비용을 요양보호사 개인이나 가족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기관, 시민 모두의 역할을 제시했다.
국가에는 돌봄을 기본사업으로 삼고 재정을 확대할 것을, 지자체에는 지역 돌봄 협약과 통합돌봄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기관과 기업에는 안정적인 고용과 정당한 보상, 안전한 일터를 요구했고, 시민에게는 돌봄노동자를 존중하는 이용문화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최경숙 보건복지자원연구원장은 “혼자 지면 짐이지만 나눠 지면 기반이 된다”며 “돌봄받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 모두가 존중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돌봄을 사고파는 서비스로만 다룰 경우 정해진 수가와 제공시간에 맞춰 실제 필요한 돌봄이 잘려 나갈 수 있다며, 돌봄노동자와 돌봄받는 사람, 가족의 권리를 함께 보장하는 공공 돌봄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요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