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 새로운 알림이 없습니다.

“욕심 없이 시작한 봉사가 큰 인연으로”…어르신 곁 지킨 가나안재가복지센터

  • 전형수 기자
  • 2026-10-30 09:00
  • 댓글 0
스크랩

[요양뉴스=전형수 기자]

“센터를 크게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은 없었어요.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이 계시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에요.”

정 센터장은 코로나19 시기 예방접종을 받은 어르신들이 귀가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고 남편과 함께 자발적으로 자차를 이용해 집까지 모셔다 드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주민센터에서도 어르신들의 귀가 지원을 부탁하면서 봉사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정 센터장과 남편은 귀가 지원 봉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장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까지 받게 됐다” 고 말하며, “사실 수많은 어르신들을 자신의 차에 태워드리며 안전한 이동과 백신 접종 이후 컨디션 확인까지 챙겨준 남편의 공이 크다”고 남편에게 공을 돌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뜻깊었던 것은 봉사를 통해 만난 어르신들과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는 점이다. 귀가를 도와드리며 알게 된 어르신 가운데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 자연스럽게 장기요양서비스와 연결됐고, 일회성 봉사가 지속적인 돌봄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가나안재가복지센터 정오순 센터장이 걸어온 길은 사업의 확장보다 ‘봉사의 연장’에 가깝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센터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특별한 홍보 전략보다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을 외면하지 않았던 시간이 자리하고 있다.

센터를 키우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어르신을 집까지 안전하게 모 셔다드린 작은 봉사가 신뢰를 만들었고, 그 신뢰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졌다.

봉사에서 시작한 인연을 돌봄으로 이어온 정오순센터장(사진=요양뉴스)
봉사에서 시작한 인연을 돌봄으로 이어온 정오순센터장(사진=요양뉴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어르신 봉사로

정 센터장이 어르신에게 각별한 마음을 갖게 된 데는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결혼 후에도 시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주변 어르신을 보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떠올렸다.

교회를 다니며 시작한 봉사는 그의 삶에 큰 즐거움이 됐다. 어르신의 목욕과 병원 방문을 돕고 미용실에 동행하거나, 거동이 어려운 경우 미용사를 집으로 연결해주기도 했다.

이후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으면서 센터를 운영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사회복지사를 공부했고, 다른 장기요양기관에서 오랫동안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현장을 익혔다.

요양보호사 실무는 물론 보호자 상담과 요양보호사 관리, 행정업무 등을 직접 경험한 시간은 훗날 가나안재가복지센터를 운영하는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가족과 함께 시작한 가나안…“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시간”

센터 운영 초기에는 딸도 함께했다. 정 센터장이 현장을 맡고 딸이 컴퓨터와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어린 자녀를 키우던 딸과 일하다 보니 손주들을 카시트에 태우고 여러 지역을 오가며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업무가 끝나면 아이들과 주변 맛집이나 놀이터를 찾았다.

정 센터장은 “육아와 일을 병행해 딸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추억”이라며 “그 시간을 함께 보내 딸과 정이 더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현재는 오랫동안 함께한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들이 센터를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장기근속 직원도 적지 않아 서로의 업무 방식을 이해하며 좋은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가나안’이라는 이름도 가족이 지었다. 사위가 ‘약속의 땅’이라는 의미를 담아 제안했다. 신앙은 정 센터장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지만 센터 운영에서는 종교에 기대기보다 현장에서 좋은 돌봄으로 인정받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좋은 매칭은 어르신을 잘 아는 것부터”

정 센터장이 방문요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르신과 요양보호사의 ‘매칭’이다.

건강 상태와 성격, 생활환경이 모두 다른 만큼 단순히 근무 시간이 맞는 요양보호사를 연결해서는 좋은 돌봄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본다.

정 센터장은 “좋은 매칭을 하려면 먼저 어르신을 잘 알아야 한다”며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그분과 잘 맞을 수 있는 요양보호사를 찾는다”고 말했다.

센터 업무가 많아진 지금도 보호자가 챙기기 어려운 어르신이 있으면 주말에 식사를 가져다드리거나 커피 한 잔을 건네기 위해 찾아가기도 한다.

“제가 맡았던 분들에게는 정말 진심이었어요.”

정 센터장이 말하는 돌봄의 기준이다.

묵묵한 봉사와 실천이 남긴 뜻깊은 기록(사진=요양뉴스)
묵묵한 봉사와 실천이 남긴 뜻깊은 기록(사진=요양뉴스)

 

가족이 전한 감사…돌봄으로 맺어진 인연

정 센터장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어르신과 가족의 마음을 마주할 때다.

치매로 머리를 벽에 부딪히는 행동을 반복하던 한 어르신의 가족은 장기요양제도를 잘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 센터장은 장기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방문요양을 연결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가정을 살폈다.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뒤 빈소를 찾자 딸은 정 센터장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돌봄에 대해 몰라 힘들었는데 모든 과정을 도와줘 고맙다는 인사였다. 상중에도 감사의 마음을 담은 음식을 보내왔다.

정 센터장은 “무엇을 보내주셨느냐보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말기 난소암으로 힘들어하던 어르신의 마지막 시간도 기억에 남는다. 정 센터장은 요양보호사 근무 시간 외 돌봄공백이 생기는 아침저녁마다 어르신을 찾아가 필요한 돌봄을 챙기는 한편 오랫동안 떨어져 왕래없이 지내던 딸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도왔다. 어르신이 딸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어 하자 직접 이불을 챙겨가 가족이 마지막 시간을 함께할 수 있도록 했다.

장례식에서 딸과 사위는 정 센터장에게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저를 기다리셨던 것 같아요”…잊지 못할 마지막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한 어르신의 임종도 잊을 수 없다.

대장암 수술 후 변실금으로 어려움을 겪던 어르신을 정 센터장은 꾸준히 찾아가 청소와 목욕 등을 도왔다. 미안한 마음에 도움을 거부하는 때도 있었지만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방문했을 때 어르신은 한쪽 눈을 뜬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 센터장이 눈물을 닦아드린 직후 어르신은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센터장님을 기다리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러 어르신의 임종을 경험한 정 센터장에게도 가장 마음 아프게 남은 순간이다.

그는 돌봄이 단순히 정해진 시간 동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지막 삶까지 함께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힘든 경험이 알려준 기록과 소통의 중요성

상처로 남은 경험도 있었다. 교통이 불편해 요양보호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의 어르신을 돌보던 중 건강 문제와 욕창 등이 겹쳤고,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뒤 가족과 보상 문제를 둘러싼 갈등까지 발생했다.

센터는 관련 기록과 서류를 통해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보험 처리에 협조했지만 정 센터장은 큰 정신적 부담을 겪었다.

이를 계기로 보호자와의 충분한 소통과 정확한 기록, 객관적인 업무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확인했다. 가족 역시 평소 돌봄 과정에 관심을 갖고 센터와 소통하는 것이 오해를 줄이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곳에서 마지막까지”…정오순 센터장의 다음 꿈

정 센터장의 다음 목표는 단순히 센터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재가복지센터와 데이케어센터, 요양원 등이 한 공간에서 연계돼 어르신의 상태에 따라 필요한 돌봄을 끊김 없이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정 센터장은 “상황에 따라 시설로 가셔야 할 때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한곳에서 편안하게 모시고 마지막 임종까지 잘 돌봐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코로나 예방접종을 마친 어르신을 집까지 모셔다드렸던 작은 봉사는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졌고, 그 인연들이 쌓여 오늘의 가나안재가복지센터가 됐다.

센터를 크게 만들겠다는 욕심보다 눈앞의 어르신에게 필요한 일을 먼저 해온 시간. 정오순 센터장에게 가나안재가복지센터의 성장은 결국 ‘봉사가 만든 신뢰의 결과’다.

매일의 돌봄을 준비하는 가나안 사무실(사진=요양뉴스)
매일의 돌봄을 준비하는 가나안 사무실(사진=요양뉴스)

 

<저작권자 © 요양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쓰기

“욕심 없이 시작한 봉사가 큰 인연으로”…어르신 곁 지킨 가나안재가복지센터

  • 전형수
  • 2026-10-3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