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뉴스=박지성 기자] 노인이 넘어져 다친 뒤 치료비를 지원하는 대신, 넘어지기 전에 집부터 고쳐주는 사업이 뉴질랜드에서 진행되고 있다.
뉴질랜드 공공 사고보상기관인 ACC(Accident Compensation Corporation)는 최근 고령자의 집을 직접 찾아 낙상 위험요소를 확인하고 안전설비를 설치하는 ‘In-Home Safety’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대상은 65세 이상 고령자다. 과거 낙상 경험이 있는 경우에는 55세 이상도 참여할 수 있다. 현재 6개 지역의 지역사회 기관과 연계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방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지역기관이 대상자를 발굴하면 전문가가 실제 집을 방문해 낙상 위험이 있는 곳을 살펴본다. 위험요소가 확인되면 보건·재활 분야 전문가가 개선방안을 제안하고, 필요한 경우 전문 시공업체가 안전설비를 설치한다.
지원 품목에는 최대 2개의 안전손잡이와 욕실 미끄럼방지 매트 등이 포함된다. 현장점검과 설치 비용은 참여자가 부담하지 않는다.
뉴질랜드 ACC는 고령자의 집을 방문해 낙상 위험을 평가하고 필요한 경우 안전손잡이와 미끄럼방지 매트를 무료 설치하고 있다 (사진= AI기반 요양뉴스 재구성)80세 넘으면 2명 중 1명 낙상 부상
ACC가 주거환경에 직접 개입하는 이유는 고령층의 낙상 위험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ACC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는 매년 65세 이상 3명 중 1명이 낙상으로 부상을 입는다. 80세 이상에서는 2명 중 1명까지 비율이 높아진다. ACC가 매년 회복을 지원하는 낙상 관련 부상도 70만건이 넘는다.
올해 들어서도 9월 말까지 접수된 낙상 관련 신규 부상 청구는 64만6천여건이다. 같은 기간 기존 청구를 포함한 낙상 부상 관련 비용은 18억5천만 뉴질랜드달러를 넘어섰다. 이 수치는 고령자뿐 아니라 전체 연령의 낙상사고를 포함한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82세 린 스트로드-페니 씨 역시 여러 차례 낙상을 경험했다.
약 10년 전 정원에서 넘어져 갈비뼈를 다친 것을 시작으로 여행 중에는 빗길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반복된 낙상은 외출과 운전 등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ACC는 이 같은 고령자에게 사고 이후 치료와 재활만 제공하는 대신 집 안에서 다시 넘어질 가능성을 낮추는 데까지 개입하고 있다.
이번 사업의 효과도 장기간 추적한다. ACC는 참여자가 거주하는 주소에서 발생하는 낙상 부상 청구를 최대 10년 동안 관찰해 주거환경 개선이 실제 낙상 예방으로 이어지는지를 분석할 계획이다.
손잡이 달았더니 낙상 부상 26% 줄었다
이 같은 접근은 기존 연구에서도 효과가 확인된 바 있다. 뉴질랜드 오타고대학교 연구진은 842가구를 대상으로 계단과 욕실 손잡이, 외부 조명, 미끄럼방지 시설 등을 설치한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의 낙상 부상을 비교했다.
그 결과 주거환경을 개선한 가구에서는 집 안에서 발생한 낙상 부상이 연간 2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치된 시설과 직접 관련성이 높은 낙상 부상은 39% 줄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란셋(The Lancet)’에 발표됐다.
당시 주택 한 곳을 개선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평균 564뉴질랜드달러였다. 설치 항목에는 계단과 욕실 손잡이, 외부 계단의 미끄럼방지 표시, 조명, 들뜬 카펫과 매트 보수 등이 포함됐다.
후속 경제성 분석에서는 이런 주거 개선으로 얻는 사회적 편익이 투입 비용의 최소 6배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할 경우 비용 대비 편익은 이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한국과 달리 주택 간의 거리가 먼 뉴질랜드에서는 노인돌봄시설에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아, 자택 공간을 친노인 환경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AI기반 요양뉴스 재구성)운동부터 집수리까지 ‘넘어지기 전’ 개입
뉴질랜드의 낙상예방 정책이 집수리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ACC는 ‘Live Stronger for Longer’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근력·균형 운동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전국 ACC 인증 프로그램은 1,700개 이상이며 연간 약 4만4천명의 고령자가 참여하고 있다. 집에서도 균형훈련을 할 수 있도록 무료 앱 ‘Nymbl’도 제공한다.
즉 고령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근력과 균형을 유지하는 프로그램과 함께, 실제 생활공간에서 넘어질 수 있는 위험요소도 줄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예방 중심 접근에는 뉴질랜드의 사고보상제도 특성도 영향을 미친다. ACC는 1974년부터 사고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뉴질랜드 내 사고 부상에 대해 치료와 재활 등을 지원하는 무과실 사고보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ACC의 주요 역할 가운데 하나다.
노인 낙상을 개인에게 “조심하라”고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운동과 주거환경을 함께 바꾸는 이유다.
최근 시작된 In-Home Safety 사업도 아직 전국적인 상시 지원제도가 아니라 6개 지역에서 효과를 확인하는 단계다. ACC는 향후 최대 10년간의 데이터를 통해 손잡이와 미끄럼방지 설비 같은 비교적 단순한 주거환경 개선이 실제 낙상 부상과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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